“부딪힐 때 생기는 비산 혈흔
피해자 저항흔 찾을 수 없어
항소심, 추측성 진술에만 의존”
치매 노모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중형을 선고 받은 60대 아들이 대법원의 무죄 취지 판단으로 극적 반전을 맞았다.
대법원 3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존속상해치사 혐의로 기소된 노모(63)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구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2일 밝혔다.
대법원은 2심이 유죄 뒷받침 증거와 상반되는 대목까지 모두 따져 논리적으로 면밀히 판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관이 작성한 부검감정서, 당시 피해자를 발견한 119구조대원과 응급실 당직의사 등의 추측성 진술에만 의존했다고 문제 삼았다. 그러면서 “형사재판에서 요구되는 증명 정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
노씨는 2015년 10월 경북 성주군 주거지에서 당시 86세 노모의 머리채를 잡고 확인되지 않는 곳에 얼굴을 내려찍는 등 폭행, 두개골 및 목뼈 골절로 노모가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0년 넘게 홀로 어머니를 모셔온 노씨는 법정에서 “모친이 넘어지면서 장롱 등에 머리를 부딪혀 다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 법원은 만장일치로 유죄 평결한 배심원단 판단을 존중, 징역 6년을 선고했다.
2심은 죄질에 비해 형이 낮다는 검사 주장을 받아들여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패륜 범죄로 참담한 결과가 발생했는데도 반성은커녕 범행을 부인하고, 노모가 넘어져서 다쳤을 것이란 납득하기 힘든 변명으로 책임을 피했다”고 질타했다. 1심 배심원 7명 중 4명이 징역 10년형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낸 점도 고려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오히려 항소심이 수긍하기 힘든 느슨한 판단을 했다는 취지의 결론을 냈다. 재판부는 머리채를 잡고 단단한 물체에 부딪히게 할 경우 발생하는 비산(飛散)혈흔이 집안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은 점과 부검기록 등에 피해자의 저항흔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점을 들어 유죄로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조용한 시골 집성촌에서 폭행으로 소란이 있었다면 이웃 누구라도 알았을 텐데, 주변 탐문 결과 사건 당일 어떤 소리도 들은 적이 없던 것으로 나온 점도 들었다.
아울러 장롱 아래쪽 문짝의 움푹 들어간 부분도 주목했다. 패인 부분이 하얀색으로 남아있어 움푹 들어간 지 오래되지 않았다고 판단하며, 피해자 키와 방 입구 문턱에서 장롱까지 거리를 감안할 때 발을 헛디뎌 앞으로 넘어지면 패인 부분에 충분히 부딪힐 수 있는지 심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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