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 부담 얼마나 더 늘까
지금은 年 9500억원 수준
한미 정상회담서 ‘공평 분담 열망’
사드ㆍ전략자산 비용 추가 가능성
2. 안 쓰고 쌓인 돈 1조원 추정
분담금 절반 이상 현금으로 지급
다른 데 돌려 써도 알 길 없어
“지출 투명성 확보 제도 마련을”
3. 5년 단위 총액 방식 괜찮나
거액 어디에 쓰는지 불투명
해마다 재원 배분하는 방식은
수요 커지면 그만큼 부담 늘어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어떻게 분담할지를 놓고 한미가 5년마다 벌이는 줄다리기의 시작이 임박했다. 연간 약 700조원 규모의 패권 유지 비용에 ‘동맹국 안보’라는 외피를 씌운 미국은 늘 상대국이 고통을 나눠주길 바랐지만 체면을 지키느라 지금껏 노골적으로 압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는 아주 솔직한 노선이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그는 동맹국들을 상대로 ‘자국 방위에 돈을 좀 쓰라’고 요구했다. 세탁기ㆍ태양광 제품에 이어 철강ㆍ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통상 압박은 이미 시작됐다. 미국발 2차 파고는 방위비 분담 문제일 공산이 크다. 유난히 힘들 것으로 짐작되는 이번 협상의 핵심 쟁점 3가지를 꼽아봤다.
①규모: 사드ㆍ전략자산 비용 부담 요구 가능성
역시 핵심 쟁점은 한국이 매년 떠안을 몫의 규모다. 지금은 연 9,500억원 수준이다. 약 2조원으로 추정되는 주한미군 주둔비 총액의 절반에 약간 못 미친다. 내년부터 적용될 제10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협상 때 미국이 우리에게 요구할 분담금의 크기는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 정도가 되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전망이다. 총액의 55% 선이다.
명분은 ‘공평한 분담’이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부 부차관보는 국방전략 브리핑에서 한미 방위비 분담금과 관련해 “공평이라는 관점에서 현실을 고려할 때 눈금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전쟁이 발발한 1950년에는 한국의 하루 평균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달러였지만 지금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수준 높은 나라 중 하나”라며 “우리는 도전들에 직면해 있고, 동맹국들로부터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요구 근거도 없지 않다.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의 공동언론발표문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관련 공평한 비용 분담을 향한 열망을 인정했다”는 대목이 있다. 뒤집으면 지금까지는 공평하지 않았다는 점을 양국이 인정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당시 회담에서 양 정상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의 한반도 배치 및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비용을 방위비 분담금으로 충당하는 길도 터놓은 듯하다. “분담협상을 통해 동맹의 연합 방위 태세ㆍ능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기로 했다”라는 문구를 발표문에 포함시키면서다. 실제 국회입법조사처는 21일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1조원대 사드 포대 설치와 연 20억원 규모의 사드 운용, 전략폭격기 B-1B 등 미 전략무기 출동 등에 소요되는 비용을 분담금 증액 요구 근거로 삼을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반면 “현재 방위비 분담 수준이 다른 미 동맹국들에 뒤지지 않는다”(장원삼 한미 방위비 분담 협상 대표)는 게 우리 기본 입장이다. 일본과 독일의 부담 비율은 각각 50%, 20%가량이다. 이번 협상을 통해 우리 분담금이 10억달러를 넘긴다면 비율에서 일본마저 앞지르게 된다. 무상 제공한 주한미군 기지용 땅값과 감면해준 세금 등까지 감안할 경우 이미 부담률이 60~70%에 이른다는 게 일부 전문가의 주장이다. 우리 정부는 의정부ㆍ동두천 기지를 평택과 대구 등으로 옮기는 연합토지관리계획(LPP) 사업 비용은 미국이 대기로 한 양국 합의를 뒤집고 주한미군 평택 기지 캠프 험프리스 확장 비용(107억달러) 중 90% 이상을 부담하기도 했다.
분담금 용처 범위 확대가 합의 위배라는 견해도 없지 않다. 박기학 평화통일연구소장은 “SMA가 방위비 분담금 사용 대상을 주한미군 장비에 한정하고 있는 만큼 순환 배치되는 미 전략자산에 분담금을 지출하는 건 협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②투명성: 남긴 돈 1조원에 돌려써도 속수무책
분담금 집행의 투명성과 관련한 한미의 이해관계도 엇갈린다. 한미는 8차 협정(2009~2013년 적용)부터 분담금 중 미군기지 내 각종 건설비의 현물 지원 비율을 단계적으로 확대했다. 7차까지는 현금 지원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9차에서 군사 건설비 현금 지원 비율을 12%까지 낮췄다. 2014년(총액 9,200억원) 기준 군사 건설비는 분담금의 45%(4,110억원) 수준이다. 분담금은 주한미군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근로자 인건비와 군사 건설비, 군수 지원비 등 3가지 명목으로만 사용될 수 있다.
문제는 여전히 전용(轉用) 가능한 현금이 많다는 사실이다. 분담금 중 군사 건설비를 뺀 항목은 현금으로 지급될 수밖에 없어서다. 돈을 주고 나면 미국이 그 돈을 어디에 썼는지 확인할 길이 사실상 없다는 비판은 줄곧 제기돼 왔다. 이에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6일 국회 원내대책회의에서 “지출의 투명성 확보를 위한 제도 개선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 심각한 건 쌓인 돈이다. 이런 미집행액 역시 제대로 된 규모를 알기가 어렵다. 9,000억~1조원가량일 거라고 추정만 할 뿐이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에 따르면 미국은 매년 필요 이상의 돈을 요구해 일부를 꾸준히 축적하는 한편 받아간 돈은 다 쓰지 않고 남겨 모았다. 현금으로 지급된 군사 건설비를 집행하지 않고 은행에 예치해 막대한 이자 수익을 챙긴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서도 미측이 묵묵부답이라는 게 김 의원 주장이다.
③결정 방식: 총액 뭉뚱그려 주니 어디 쓰는지 깜깜
현재 정부는 5년 단위로 기준액을 협상하는 ‘총액형’에서 매년 필요한 분담금이 어느 정도인지 산출한 뒤 재원을 배분하는 ‘소요형’으로 분담금 결정 방식을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바로 투명성 문제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결론이 나진 않은 상황이다.
소요형의 경우 집행 과정에서 투명성을 확보하기가 용이한 대신 수요가 클 경우 우리 부담도 따라 커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총액이 증가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딜레마다. 하지만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방위비 분담금 협상의 핵심 문제가 투명성인 만큼 어떤 방식으로든 분담금 결정 방식 개선 문제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소요형으로 바꾸되 총액 증액분 상한선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도 일각에선 나온다.
10차 협정 협상은 다음달 초부터다. 9차 협정은 올 12월말로 마감된다. 이재웅 한미 방위비 분담 협상 태스크포스(TF) 부대표는 “내달 초 시작하는 쪽으로 미국과 시기를 조율 중”이라며 “통상 첫 협상은 미국 쪽에서 해 왔다”고 말했다. 장소는 하와이가 유력하다. 김동엽 교수는 “분담금 규모 확대ㆍ축소에 매달리기보다 건강한 한미동맹을 협상 목표로 삼는 게 바람직하다”며 “국민과 전문가의 힘을 빌어 투명하게 공개하면서 협상하면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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