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 계주 3,000m 대표 김아랑/사진=김아랑 인스타그램.
[한국스포츠경제 김정희] 김아랑(23ㆍ한국체대)이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왼쪽 뺨에는 반창고를 붙인 채였다. 지난 20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3,000m 계주 결승에서 그는 심석희, 최민정, 김예진, 이유빈(예비)과 함께 출전해 금메달을 따냈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겪은 그의 고충을 잘 아는 코치와 동료 선수들은 김아랑의 등을 연신 두들겼다. 위로와 축하의 의미였다.
그가 눈물로 적신 반창고에는 금메달에 버금가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아찔한 사고가 있었다. 지난해 1월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위험천만한 상황에 놓였다. 전국동계체육대회에 참가한 김아랑은 경기 도중 코너를 돌다가 상대 선수의 스케이트 날에 왼쪽 눈 밑을 깊게 베였다. 다행히 눈은 다치지 않았지만 출혈이 심하고 피부가 5cm 정도로 크게 찢어져 부상 정도가 심각했다. 결국 수술대에 올랐고 흉터가 남았다.
당시 사건은 김아랑에게 지우기 힘든 흉터와 트라우마로 남았다. 흉터는 옅은 분홍색의 반창고로 가렸지만 코너를 돌 때면 재차 떠오르는 사고의 순간은 지우기 힘들었다. 빙판 위를 지배해야 하는 쇼트트랙 선수에게 코너와 스케이트 날, 상대 선수가 두려움의 대상이 됐다. 평창올림픽을 준비하면서 김아랑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야 했다. ‘효자 종목’인 쇼트트랙에서 다량의 메달도 기대되는 터였다. 제갈성렬 SBS 해설위원은 “쇼트트랙에서 선수들은 코너를 돌 때 극강의 공포심을 느낀다”고 짚었다. 또 “아웃코스에서 인코스로 들어올 때 원심력이 더해져 가장 무섭고 힘들다”고 설명했다.
우려했던 일이 올림픽 무대에서 벌어졌다. 지난 17일 여자 쇼트트랙 1,500m 경기를 마친 김아랑은 “아웃코스로 상대 선수를 제치다 사고가 났다. 오늘도 아웃코스를 노릴 때 무서운 마음이 생겨 잠시 주저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두려움을 이겨내고 치고 나갔어야 했는데 그 부분이 조금 걸린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최종 4위를 기록하고 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
김아랑은 심기일전했다. 그는 “아직도 (트라우마가) 조금 남아있는 것 같다”고 시인하고 “항상 그랬던 것처럼 긍정적인 마인드로 이겨내겠다”고 다짐했다.
김아랑(128번)이 20일 쇼트트랙 여자 계주 3,000m에서 주행 뒤 김예진을 밀어주면서 넘어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마침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냈다. 3,000m 계주 금메달의 1등 공신은 김아랑이었다. 중국, 캐나다, 이탈리아와 벌인 결승은 예상대로 치열한 견제 속에 펼쳐졌다. 특히 앞선 국제 대회에서 ‘나쁜 손’ 반칙을 했던 중국의 판커신이 출전해 치열한 몸싸움도 경계해야 했다. 어려운 상황에서 김아랑은 주저하지 않고 더 빠른 속도로 앞으로 뻗어나가며 다음 주자에게 터치 없이 홀로 두 바퀴를 더 돌았다. 덕분에 한국은 기록을 단축하고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상대 선수들과 충돌을 피하고 주저 없이 돌진한 결단력이 눈부셨다. 김아랑의 반창고는 극복과 성장의 상징이 됐다.
심석희(왼쪽부터) 최민정, 김예진, 김아랑, 이유빈/사진=연합뉴스.
김정희 기자 chu4@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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