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하이테크 농업
지난해 과일ㆍ채소 수출액 35억弗
사상 최초로 쌀 수출액 앞질러
토지 임대 기간 늘리고 세제 혜택
외국인 직접 투자 프로젝트도 늘어
일반 소비자 ‘유기농’ 인식 엷지만
성장 가능성 상당... “이제 시작”
베트남이 ‘쌀 생산 대국’이라는 사실은 ‘쌀국수=베트남’ 공식을 통해 웬만한 한국인들도 다 아는 상식. 그러나 베트남이 앞으로도 ‘쌀의 나라’로 불릴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지난해 베트남의 과일ㆍ채소 수출이 전년 대비 43% 급증한 35억달러(약 3조7,500억원)를 기록하면서 사상 최초로 쌀 수출액(26억2,000만달러)을 앞질렀기 때문이다. 채소와 과일 등 고소득 작물의 성장 가능성을 확인한 베트남 정부는 농업에 첨단 기술을 접목하는 방식으로 농업생산 향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농업에 ‘하이테크’ 탑재
농작물 재배에 첨단 기술을 접목한 ‘하이테크 농업’의 선두 주자는 베트남 중남부에 위치한 럼동(Lam Dong)성. 성도 달랏(Da lat)시 주변은 해발 1,500m 고산지대로 연중 봄 날씨를 자랑하는 베트남 최대의 채소 생산지다. 이곳에서 난 채소는 전국에 공급된다.
최근 찾은 달랏공항 인근에 자리 잡은 ‘PT 팜스’ 농장 작업장에서는 토마토 접붙이기가 한창이었다. 이 농장 대표 응우옌 홍 퐁(51)씨는 “맛과 향이 좋은 토마토와 병충해에 강한 토마토를 접붙여 만든 모종을 계약 농장에 공급한다”며 “농약을 전혀 치지 않고도 재배가 가능하다”고 소개했다. 특히 로메인 상추, 샐러리 등 잎 채소도 병충해에 강한 품종을 개발, 무농약으로 재배한다. 모기장 같은 그물로 날아드는 벌레를 막고, 그래도 안으로 들어온 벌레들은 노란 끈끈이 트랩으로 방제한다.
그는 “농약을 치지 않기 때문에 로메인 상추는 바깥 잎을 뜯어내지 않고도 먹을 수 있어 농약을 쳤을 때보다 무거운 상태로 출하되며, 가격도 30% 가량 더 높다”고 말했다. 그는 “육종 기술, 양액 재배 등 첨단 기법으로 키운 덕분에 한국 등 해외 바이어들까지 방문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농장은 지난해 자체 농장(50㏊)과 인근 영세농들의 계약재배 경작지 등 총 130㏊ 면적에서 1만2,000톤의 채소를 수확했다. 퐁 대표는 단위 면적당 일반 농가보다 40% 가량 높은 수익을 올린 것으로 분석했다.
꿈틀대는 유기농 산업
‘PT 팜스’처럼 첨단 농업기업이 생겨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최근 몇 년 사이 중앙ㆍ지방정부 차원의 ‘하이테크 농업’ 장려 정책 덕이 컸다. 럼동성 개발국 관계자는 “첨단 농업기술 기업들의 투자를 끌어내기 위해 공업지역을 농업지역으로 전환하고, 토지 임대시 여타 지역(11년)보다 긴 임대기간(15년) 보장, 세제 등 각종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면서 “농업지역이지만 공장을 세워 포장, 물류 업무 등을 단번에 처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용지 목적 전환은 중앙정부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이 같은 혜택 덕분에 럼동성은 농업 부문에서만 지난해 103건의 외국인직접투자(FDI) 프로젝트를 제안 받았다.
중앙 정부 차원에서도 독려와 지원이 병행되고 있다. 응우옌 쑤언 푹 총리는 지난해 12월 열린 농업 관련 한 포럼에서 과일과 채소 중심으로 생산 기술의 고도화를 통해 베트남 농산물의 경쟁력 제고를 주문했다. 이에 앞서 11월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서는 농업농촌개발부 차관이 향후 농업과 농촌의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부문에서 외국인 투자에 대한 문호 개방을 예고했다. 한국무역협회 호찌민지부 관계자는 “베트남 농업은 제조업 다음으로 큰 경제 규모를 자랑하지만 규모가 적은 소매업에 비해서도 경제성장률 기여도가 떨어진다”며 “농업ㆍ농촌발전, 경제성장 등 다양한 포석을 염두에 둔 정책”이라고 분석했다.
여물지 않은, 성장 잠재력 큰 시장
정부 차원의 이런 노력 덕분에 무농약, 유기농 퇴비 등을 활용한 유기농 재배 면적은 급증했다. 세계유기농업운동연맹(IFOAM)에 따르면 유기농작물 재배 면적은 2007년 1만2,000㏊에서 2015년 7만6,000㏊로 6배 확대됐다. 이는 같은 기간 전 세계 유기농작물 재배 면적 평균 증가(1.6배)를 크게 상회하는 것이다.
하지만 재배 면적 확대에도 불구하고 전체 농지 면적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 미만일 정도로 일반 소비자들에게 ‘유기농’에 대한 인식 수준은 엷다. 아들(4)을 두고 있는 은행원 흐엉(34)씨는 “유기농 제품, 안전한 제품이라고 광고하지만 가격만 올려서 판다는 게 일반적인 주부들의 인식”이라며 “믿을 수 있는 인증 시스템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외면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베트남에서 유기농 시장의 성장 잠재력은 상당하다는 게 이곳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달랏에서 한국 딸기를 양액 재배해 대형마트 등에 납품하고 있는 박남홍(50)씨는 “한국보다 배 이상 비싼 가격에도 ‘한국’이라는 브랜드 때문에 공급 물량이 달릴 정도다. 신뢰를 쌓은 유기농 농산물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농업농촌개발부 한 고위 관계자는 최근 하노이에서 열린 ‘유기농 시장 개발’ 세미나에서 “유기농 시장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며 “확대되고 있는 유기농 농산물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관련 법령 정비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김석운 베트남경제연구소장은 “제조업 투자 중심의 한국 기업들이 예의주시해야 할 분야”라고 말했다.
달랏ㆍ호찌민=글ㆍ사진 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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