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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올림픽과 글로벌 경쟁의 논리

입력
2018.02.21 16:0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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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중계를 보는 것은 색다른 매력이 있다. 특히 분초를 다투는 순위와 기록 경쟁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와 무관하다고 여겼던 동계올림픽의 여러 종목에서 한국은 당당히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한국 선수들이 키가 한 뼘씩 큰 외국 선수들을 제치고 시상대에 오르는 장면은 몇 번을 다시 보아도 대견스럽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놓고 벌인 경쟁에서 얻은 승리는 치열한 준비와 기획의 결과들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세계화를 공개적으로 논하기를 꺼리게 되었다. 철 지난 개념이라는 느낌을 주는 데다 시장과 경쟁을 바탕으로 한 신자유주의는 공정사회의 적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서이다. 세계에 유례없는 고속성장을 했지만 그보다 빠른 속도로 저성장,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글로벌 경쟁에서 이익을 볼 것이라고 기대하는 계층보다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우려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기성세대도, 젊은 세대도 경쟁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다. 글로벌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벗어난 공공분야의 자리를 꿰어 차려고 구직자들은 경쟁률만 100대 1이 넘는 공무원 시험의 수렁으로 몰려들고 있다. 젊은 세대들은 외친다. 밖으로 등 떠밀지 말라고, 가려면 ‘네가 가라’고. 이들은 경쟁을 피할 수 있을까 기대하며 현실과 가상현실이 뒤섞인 탈출구를 찾고, 북유럽 복지사회를 동경한다.

전에는 서로 앞다투어 잡으려던 외국대학 연수 기회도 취업 스트레스에 밀려 시큰둥해졌다. 실제로 제품을 만들고 신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외국 경쟁자들에 비해 토익 문제를 풀고 자소서 준비에 매진하는 청년들의 글로벌 순위는 계속 떨어지고 있다. 더 늦으면 막차에 올라탈 기회도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경쟁은 점점 내향적이 되고, 부모들의 노후를 담보로 한 교육 투자는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에 정산된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내향적 경쟁은 더 많은 실패자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고, 역설적으로 글로벌 무대의 파이를 먼저 집어먹으려는 개인플레이는 더 늘어난다.

이미 한국 경제는 고도로 세계화돼 있다. 비행기를 타고 나가지 않아도 세계화의 중심에 서 있다. 이제는 매 순간이 올림픽 본선과 같은 국제무대다. 더 이상 국내ㆍ국제의 구분은 큰 의미가 없다. 세계화의 논리는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이다. 물론 무턱대고 글로벌 경쟁에 뛰어들다가는 객사하기 십상이다. 무엇이 글로벌 스탠더드인지를 보여주고, 어떻게 거기에 가깝게 갈 것인지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스포츠나 경제나 같은 논리이다. 안으로 공정한 경쟁의 룰을 만들어 주는 것과 동시에 젊은 세대들이 눈을 돌려 자신 있게 밖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더 넓혀 주어야 한다.

글로벌 경쟁에서 승리하는 또 하나의 요인은 팀워크에 있다. 개인의 경쟁력을 넘어 공동의 협업은 몇 배의 성과를 낸다. 공격수와 수비수는 역할이 다를 뿐 모두 중요하다. 각자의 다양성과 기여를 묶어내는 국가의 역할은 K팝 스타들을 만들어내는 기획사와도 유사할 것이다. 강대국 사이에서 이리저리 치일 수밖에 없는 갑갑한 현실에서 뾰족한 창 끝을 안쪽으로 서로에게 겨누는 대신, 밖으로 밀고 나갈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 글로벌 경쟁력 모델을 다시 기획해 볼 때가 됐다. 글로벌 경쟁의 무대로 나가는 것은 단순히 성장 모델이 아니라 생존 모델이자 방어 전략이다. 세계화의 속도 조절은 글로벌 스탠더드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그것을 자신의 지표로 내재화시키면서 스스로를 기획해 나갈 수 있을 때 가능해진다.

아직 동계올림픽의 여러 도전이 더 남았다. 세계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는 멋진 선수들을 보면서, 스포츠를 넘어 각 분야 국가대표들이 글로벌 경쟁에서 승전보를 울려주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닦여진 기회의 길로 더 많은 후배와 동료들이 따라가고, 새로운 영역을 넓힐 것이다.

이재승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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