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계 대표 원로 오태석도 지목
서울예대 학생들 “교수직 해임을”
이윤택 제자 ‘사과 리허설’ 폭로
“더 불쌍해 보이는 표정 연습도…”
연희단거리패 출신들에도 불똥
국내 연극계의 거물인 오태석(78) 연극연출가 겸 극단 목화레퍼터리컴퍼니(목화) 대표가 또 다른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됐다. 50년 넘게 극작가와 연출가 제작자 교수 등으로 활동하며 국내 연극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라 충격이 크다. 공연계에선 여러 유명 인사들이 다음 폭로의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어 이윤택 연극연출가의 성폭력 사건으로 당겨진 미투 불길이 더 강하고 넓게 번질 전망이다.
오 연출가의 성추행은 이 연출가 사건이 불거지면서 온라인을 중심으로 거론됐다. 실명 폭로는 없었으나 '연극계 대가' '극단을 운영하는 서울예대 교수' 등으로 지칭됐다. 술자리 등에서 학생들의 신체를 만졌지만 그가 존경 받는 원로라는 이유로 학생들은 문제제기를 할 수 없었다는 글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왔다.
실명 폭로 내용이 없고, 오 연출가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학생들이 행동에 나섰다. 서울예대 총학생회는 21일 ‘#With you’라는 제목으로 입장문을 발표하고 “오태석 교수에 대한 교수직 해임과 서울예술대학교에서의 퇴출, 그리고 피해자들에 대한 공개적 사과를 총장과 대학본부에 강력히 요청한다”고 밝혔다. 오 연출가는 올해 1학기에도 서울예대에서 ‘희곡창작기초’ 등 수업을 할 예정이지만 학생들 사이에서 폐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예대 총학생회는 “올해 1학기 예정돼 있던 그의 수업을 들을 예정인 학생들에게는 피해가 없도록 후속조치를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오 연출가는 묵묵부답인 상황이다. 목화는 이날까지 서울 중구 서울남산국악당에서 연극 ‘템페스트’를 무대에 올렸다. 오 연출가는 16일을 마지막으로 공연장에 오지 않고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목화는 “오 연출가의 개인적인 일이라 극단 자체에서 입장을 낼 계획은 아직까지 없다”고 밝혔다. 오 연출가의 신작 ‘모래시계’는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 창작산실 작품으로 선정돼 다음달 무대에 올려질 예정이었다. 문예위는 이날 긴급 회의를 소집해 공연 취소 여부 논의에 들어갔다.
지난해 극작가 등단 50주년을 맞은 오 연출가는 한국의 전통 연희를 기반으로 동서양 연극 요소가 어우러진 작품을 선보여 온 국내 연극계 대표 원로다. 대표작으로 ‘백마강 달밤에’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 등이 있다. 목화는 유명 배우와 연출가의 산실로도 이름이 높다.
공연계 성추행 의혹 폭로는 오 연출가에서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SNS를 중심으로는 성추행, 성폭행에 연루된 공연계 유명 인사들의 리스트가 돌고 있다. 극장을 운영하고 있는 유명 배우, 뮤지컬 1세대 주요 인물, 신진세대 유명 연출가 등의 이름과 성폭력 행태가 거론된다. 이들 중 한 명에게 술자리에서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다고 밝힌 한 공연계 스태프는 “연극계의 움직임을 보며 동료들과 서로의 피해 사례를 이야기하고 공론화에 대해서도 논의했다”고 말했다. 해당 인물들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은 예전부터 나돌아 누군가 용기를 내 폭로를 하면 미투 불길이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번질 수 있다는 주장도 공연계에선 나온다.
이윤택 연출가와 관련한 비판과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이날 오전 연희단거리패 단원인 배우 겸 연출가 오동식은 페이스북에 “나의 스승을 고발합니다”라고 시작하는 글을 게재했다. 그는 이 연출가가 공개 사과를 하기 전날인 18일 사과문을 완성하고 단원들과 리허설까지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성폭행과 낙태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답하기로 하고, 이 과정에서 더 ‘불쌍해 보이는’ 표정을 짓는 연습을 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연희단거리패 출신 유명 배우들에게도 불똥이 튀었다. 연희단거리패에 있을 당시 이 연출가의 성추행을 묵인 또는 방관한 것 아니냐는 비난이 SNS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이 연출가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고 낙태까지 했다고 폭로한 배우 김지현과 연극계 미투 운동을 촉발한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 등 연극인들은 이 연출가에 대한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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