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은 언제나 육지를 꿈꾼다. 2017년 12월 28일 고군산군도의 3개의 섬이 사라졌다. 이미 새만금방조제로 연결된 신시도에서 무녀도와 선유도 장자도가 해상교량으로 연결된 것이다. 고군산군도(古群山群島)는 16개 유인도와 47개 무인도로 이뤄진 섬의 군락이다. ‘옛 군산의 섬 무리’라는 뜻의 지명은 엄밀히 따지면 ‘역전 앞’처럼 중복된 표현이다. ‘고군산’은 세종 때 수군 진영을 금강 하구로 옮겨 가기 전까지 군산이었다는 의미다. 또한 군산이라는 지명 자체가 바다에 산처럼 떠 있는 섬들을 은유적으로 일컫는 말이니, 고군산(古群山) 혹은 고군산도(古群山島)로 충분한 셈이다.
이름에 가장 부합하는 섬, 선유도(仙遊島)
새만금방조제 북측 출발점인 비응항(이곳도 고군산군도에 속했지만 육지가 된 지 오래다)에서 신시도까지는 왕복 4차선 일직선 도로가 시원하게 뻗어 있다. 야미도까지 완전한 직선이어서 자율주행을 체험하듯 운전이 편안하다. 중간에 ‘해넘이쉼터’나 ‘돌고래쉼터’에서 쉬어가도 좋다. 점점 육지와 호수로 변해 가는 만경강ㆍ동진강 하구로 이어지는 광활한 풍경은 국내에서 좀처럼 찾기 힘든 지형이다.
장자도까지 연결한 새 도로는 신시도 입구에서 우회전하면서 시작된다. 신시도만 해도 제법 큰 섬이어서 육지와 크게 다를 것 없는데, 고군산대교를 건너며 서서히 이국적인 풍경은 선유대교를 지나면 완전히 딴 세상으로 바뀐다. 두 개의 커다란 바위 봉우리를 중심으로 섬은 끊어진 듯 연결되고, 바다는 분리된 듯 이어진다. 멀리서 신기루처럼 아련한 풍경도 가까이 다가서면 신비로움이 한 꺼풀 벗겨지기 마련인데, 선유도는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욱 아름답다.
여행객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은 명사십리로 불리는 선유해변이다. 선유3구와 2구 마을 사이에 가늘게 이어진 제방 서편으로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드넓은 모래사장이 펼쳐진다. 무녀도ㆍ선유도ㆍ장자도 3개 섬을 통틀어 유일한 해수욕장이다. 촉촉하게 물기 머금은 모래는 곱고 단단하다. 날이 조금만 따스했더라면 맨발로 걸어보고 싶을 정도다. 따로 길을 만들지 않아도 더할 나위 없는 바다산책로이고 해변산책로다. 전국에 ‘신선’과 관련된 지명이 무수히 많지만 대부분은 엄청나게 부풀려진 이름이다. 방문객도 정색하고 따지기보다 그러려니 넘어가는 편이다. 그런 면에서 ‘신선이 노닐 만한 섬’이라는 선유도만큼 이름과 들어맞는 곳도 없을 듯하다.
그 가운데에 ‘망주봉’이 있다. 두 개의 우뚝한 바위 봉우리는 높지 않으면서도 무게 있고, 단조로우면서도 부드럽게 흘러 내린다. 너른 도포자락으로 능선을 휘감은 듯하다. 그 봉우리 한쪽 귀퉁이에 희미한 물길 자국은 선유팔경의 하나인 ‘망주폭포’다. 여름철에 큰 비가 내리면 봉우리에서 쏟아지는 7~8개의 물줄기가 폭포처럼 장관을 이룬다는 비유다. 제방을 기준으로 해변 맞은편의 ‘평사낙안(平沙落雁)’도 그 하나다. 비유가 아니라, 물 빠짐이 좋은 갯벌 중간에 형성된 모래톱이 꼭 기러기가 날아가는 것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선유팔경의 으뜸으로 꼽히는 ‘선유낙조’는 해질 무렵 어디서 보아도 황홀하다. 그 중에서도 선유해변의 잔잔한 수면에 일렁이는 석양, 선유봉(111m) 꼭대기에서 장자도와 관리도 너머 먼 바다로 떨어지는 일몰 풍경이 또한 예술이다.
선유1구 마을로 넘어오면 해변의 부드러움과 대조되는 다소 거친 해안에 산책길이 조성돼 있다. 섬 속의 반도처럼 톡 튀어나온 산자락을 약 1km 둘러 목재 데크를 깔았다. 산책로 초입의 앞삼섬, 주삼섬, 장구도는 ‘삼도귀범(三島歸帆)’이라는 이름으로 팔경에 포함됐다. 3개 섬 모두 무녀도(巫女島)에 속해 무녀가 장구를 메고 춤을 추는 형상이라는 설명도 있지만, 편정수 군산문화관광 해설사는 만선을 이루고 삼도로 들어오는 돛단배를 보고 마을 주민들이 기뻐서 춤을 추는 것으로 해석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무녀도에 딱히 이름난 굿당이나 무당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섬 이름도 무녀도(舞女島)로 바꿔야 할 판이어서 애매하긴 하다.
크기는 작지만 풍경은 대장, 장자도와 대장봉
자동차로 갈 수 있는 마지막 섬 장자도는 무녀도와 선유도에 비하면 절반도 되지 않는 작은 섬이다. 그럼에도 풍경과 이야깃거리만큼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큰 섬이다. 우선 장자(壯子)라는 이름부터 대범하다. 주민이라야 고작 140명 남짓한 작은 마을에서 고시합격자가 6명이나 나왔고, 민선 군산시장까지 배출했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작은 다리로 연결돼 장자도의 딸림 섬이라 할 수 있는 대장도는 요샛말로 하자면 조망 ‘깡패’다. 142m 높이의 바위산인 대장봉 꼭대기에 오르면 선유도뿐만 아니라 바깥바다 섬까지 항공사진처럼 시원하게 펼쳐진다. 실제 위치도 고군산군도의 중심이어서 주변의 섬들이 호위하듯 대장봉을 감싸고 있다. 동서로 각각 선유도와 관리도가 병풍처럼 두르고 있고, 남으로는 무녀도와 비안도, 북으로는 말도ㆍ명도ㆍ방축도ㆍ횡경도가 띠처럼 이어져 있다. 올망졸망한 섬들에 갇힌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하고, 희미한 안개 사이로 번지는 엷은 햇살 너머로 끝간 데 없이 너른 바다가 펼쳐진다. 장자도 밤바다를 밝히는 고기잡이 어선의 불빛, 장자어화(壯子漁火)가 이런 모습일까. 긴 꼬리를 남기며 잔잔한 수면을 미끄러지는 어선의 모습이 피안의 세계, 또 한 폭의 그림이다. 대장봉에서 보는 선유도는 꿈을 꾸듯 다시 한번 선계(仙界)에 다다른 느낌이다.
고군산군도의 이국적인 풍경은 조선조에 이미 알려졌던 모양이다. 정조대왕도 선유도의 아름다움을 직접 보고 싶어했지만, 먼 길을 행차할 수 없어 우의정 김상철(1712~1791)과 화원의 궁정화가 일행을 대신 보냈다. 일주일간 섬에 머문 일행이 이곳 풍경을 그려서 올렸더니, ‘역시 신들이 내려와서 놀 만한 장소’라 칭찬하고 더 아끼고 보호하라며 군사력을 보강했다는 얘기도 전한다.
고군산 앞바다는 아름다운 풍경만큼이나 풍성한 어장이었다. 장자도가 고향인 윤연수 해설사는 어린 시절 해변에서 돌팔매질을 하면 더러 돌에 맞은 숭어가 떠오르기도 했다고 우스갯소리처럼 과거를 회상했다. “귀한 손님이 왔는데 찬거리가 없으면, 어머니께서 1m 정도 길이의 실을 묶은 작대기에 바지락이나 굴을 미끼로 끼워 집 앞 바다에 드리웠어요. 그러면 숭어며 우럭, 노래미, 망둥어 같은 고기가 금세 걸려 올라오지”라며 믿지 못할 목격담도 들려줬다. 텃밭에서 채소 뽑아오듯 생선을 건져왔다는 말인데, 그 정도는 아니지만 지금도 해초, 조개, 굴은 언제든지 반찬으로 해먹을 정도라고 말한다.
고군산군도는 제주 근해까지 갔던 조기가 북상하는 길목이기도 하다. 배로 30분 거리에 대규모 파시(이도파시)가 열렸고, 장자도 앞에도 작은 파시(소파시)가 섰을 정도로 그물만 치면 만선이었다. 주변의 큰 섬을 제치고 수협과 초등학교가 장자도에 가장 먼저 들어선 것도 그 때문이었다.
장자도의 또 하나 자랑거리는 ‘대장도 할매 바위’다. 자신의 뒷바라지로 과거에 급제한 할아버지가 소첩과 함께 오는 모습을 본 할머니가 아기를 업은 채로 그대로 굳어져 바위가 됐다는 통속적인 이야기에, 실제로는 소첩이 아니라 역졸이었다는 반전 스토리를 입혔다. 요즘은 고시합격자를 많이 배출한 섬이라는 자랑까지 더해 ‘할매 바위’에 합격을 기원하는 발길이 더욱 늘어가고 있다.
대장봉 등반은 거리에 비해 힘든 편이지만, 가파른 구간에 계단을 설치해 천천히 걸어도 30분이면 충분하다. 선유도나 장자도의 여러 산봉우리 중 꼭 한 곳만 오르라고 한다면 단연 대장봉이다.
아름다운 풍경에 가려진 것들
고군산군도를 돌아보면서 느낀 아쉬움과 우려는 짚고 넘어가야겠다. 선유도는 관광지이기 전에 지역 주민들의 삶터이고, 더 오래 전에는 서해의 주요 교역로였다.
1123년 송나라 사신 서긍이 지은 ‘선화봉사고려도경’은 김부식 일행이 200여명에 이르는 사신을 맞이하는 상황과 당시 선유도의 모습을 그림을 그리듯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사신을 영접한) 정자는 바닷가에 있고 뒤에는 두 봉우리가 받쳐주고 있는데, 그 두 봉우리는 나란히 우뚝 서 있고 높은 절벽을 이루어 수백 길이나 치솟아 있다. 문 밖에는 10여 칸의 관아가 있고, 서쪽 가까운 작은 산 위에는 오룡묘(五龍廟)와 자복사(資福寺)가 있다. 또 서쪽에 숭산행궁(崧山行宮)이 있고, 좌우 전후에는 민가 10여 호가 있다.” (곽장근 군산대 박물관장이 문화유산채널에 기고한 ‘김부식, 군산도 방문과 국신사 영접’에서 옮김.) 거칠게 요약하면 망주봉 두 봉우리를 중심으로 고려의 국가시설이 밀집해 있다는 말이다. 2013년과 2015년 본격적인 발굴에 앞서 시굴 조사를 실시한 군산대박물관은 일대에서 대규모 고려시대 건물군과 고려청자 파편 등을 발견했다. 조명일 조사팀장은 “유물 수준으로 보아 선유도 일대가 고려의 해양도시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행궁은 임금이 나들이할 때 이용하는 별궁이고, 숭산이 개성 송악산의 별칭임을 감안하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왕이 한번쯤은 머물렀을 것으로도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선유도의 이러한 역사를 알리는 시설은 전무하다. 망주봉 아래 길가에 안내판만 하나 서 있을 뿐이어서 관심을 두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힘들다. 반면 그냥 두어도 충분히 아름다운 선유해변의 남측 언덕에는 ‘스카이라인’이 설치돼 있다. 놀이시설 하나 더 세우기 전에 역사적 가치를 알리는 작업이 우선이지 않을까, 순서가 뒤바뀐 듯하다. 군산시는 올해 선유도 고려유적 발굴 작업에 들어가고, 선유3구 어촌체험관을 역사홍보관으로 개조할 예정이라니 그나마 다행이다.
고군산군도 여행에서 당장 우려되는 점은 아이러니하게도 교통문제다. 장자도까지 큰 도로는 말끔히 닦였지만 섬 안에서 차량으로 이동하려면 불편을 각오해야 한다. 통제하지 않는다고 이곳 저곳으로 차를 몰았다가는 서로 엉켜서 얼굴을 붉힐 수도 있다. 한정된 땅에 무작정 도로와 주차장을 넓힐 수도 없는 일, 장자도와 선유도 2곳에 마련된 주차장에 차를 댄 후 섬 여행은 도보로 하는 것이 최상이다. 1시간 1,000원인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도 괜찮다. 도로 개통 이후 섬 사이의 이동 수단이던 사륜오토바이의 운행은 전면 금지했다. 관광객이 몰리는 주말에는 비응항이나 신시도 초입의 ‘신시광장’에 차를 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아예 속 편하다. 99번 시내버스가 1시간 간격으로 장자도까지 운행한다. 2층 버스여서 승용차보다 전망도 한결 시원하다.
군산=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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