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단일팀의 ‘마지막 경기’
스웨덴전 한수진 만회골 ‘유종의 미’
작별인사 얼굴엔 ‘땀과 눈물’로 범벅
아쉬운 듯 링크 계속 돌며 짙은 포옹
기립박수 관중 “괜찮아, 괜찮아” 연호
“역사적 경기, 아름다운 마무리” 감격
머리 “남북 하나로 묶어, 장벽 넘어”
‘빠암~!’
20일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마지막 경기가 끝났다. 스웨덴과의 7,8위 결정전에서 6골을 내줬지만 한수진(31)의 만회골로 ‘유종의 미’를 거둔 경기였다. 경기 결과가 아쉬운 단일팀 선수들이 고개를 떨구자, 관중들이 기립해 박수와 함께 “괜찮아” “괜찮아”를 외쳤다.
선수들은 일렬로 대열을 정비해 관중에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기어코 참아왔던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가장 먼저 눈물을 보인 건 세라 머리(30) 감독. ‘영원한 골리’ 신소정(28)이 팔을 벌리며 다가가자 울컥했는지 얼굴을 감싸더니 눈물을 훔쳐내기 바빴다. 머리 감독은 북한 박철호 감독과도 포옹하며 서로를 격려했다. 머리 감독은 “’버저가 울리면 더 할 게 없도록 후회 하지 말자’는 마음 가짐으로 경기에 임했다”며 “그 동안 열심히 스케이트를 탔고, 마지막 순간에 빛을 봤다”고 말했다.
선수들도 쉽게 경기장을 벗어나지 못했다. 경기장을 두세 바퀴 돌며 관중들에게 일일이 손을 흔들었다.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보인 선수들 얼굴엔 땀과 눈물이 뒤섞였고, 눈이 빨갛게 충혈돼 있었다. 이연정(24)은 “저희가 비록 졌지만 최선을 다했다”는 말을 떼다 순간 눈물이 차올라 말을 잇지 못했다. 실제 이날 유일한 골은 대표팀이 1년 동안 연습한 ‘패턴 플레이’로 얻어내 더욱 뜻 깊었다.
갑작스런 남북 단일팀 구성 논란의 중심에 섰던 시간들도 이들의 눈물에 한 몫 했다. 올림픽이 시작하기도 전부터 관심이 몰려 경기 외적으로 부담감이 상당했다. 골리 신소정은 “압박감과 속앓이가 심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라고 솔직하게 답했다. 랜디 희수 그리핀(30)도 “12명의 북한 선수들이 경기 2주 전에 합류하면서 어려운 점이 많았다”고 했다.
하지만 선수들의 노력으로 남북 단일팀은 하나의 ‘팀 코리아’로 거듭났다. 머리 감독은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잘한 점으로 한국과 북한을 하나로 묶어낸 것을 꼽았다. 그는 “하나의 팀으로 분위기를 끌어올려 두 골을 넣어 ‘장벽’을 뛰어 넘었다”고 하기도 했다. 선수들도 북한 선수들에 대해 “처음에는 서먹서먹하고 무섭기도 했는데 북한 선수들이 먼저 다가와 친해졌고 최근 두 경기에 만족한다”고 입을 모았다. 북한 선수들은 믹스트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경기장에서 북한 황충금(22)과 한국 최지연(20)이 와락 끌어안는 등 아쉬움을 드러냈다.
관중들은 승패를 떠나 “역사적인 경기”라며 높이 평가했다. 경기가 끝난 뒤에는 ‘손에 손잡고’를 열창하기도 했다. 서울에서 회사 동료들과 다 함께 연차 휴가를 내고 경기장을 찾았다는 조민정(29)씨는 “경기를 보는 내내 누가 한국 선수인지 누가 북한 선수인지 구분할 생각도 못했다”며 “언제 또 만들어질지 모를 단일팀이 포기하지 않고 경기장을 가르는 모습에 푹 빠져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경기를 빼놓지 않고 관람했다는 김연정(34)씨는 “결국 모든 경기에서 졌지만 마지막 경기에서 아주 멋있는 골로 아름답게 마무리한 것 같아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강릉=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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