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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총을 놓지 않는 미국인

입력
2018.02.20 16:4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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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플로리다 고교 총기 참사가 벌어지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범인의 정신건강과 그를 방치한 사회의 무관심을 탓했다. 그러자 참사에서 가까스로 생존한 여고생 엠마 곤잘레스는 분노의 눈물을 흩뿌렸다. 곤잘레스는 “그들(정치권)은 범인의 정신 건강을 강조한다. 나는 정신과 의사는 아니지만, 이건 정신 건강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안다. 총이 아니고 칼이었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을 해칠 수 없었다”고 절규했다. 미국에서 끝없이 나온 총기 규제론의 당위성을 이토록 간명하게 주장한 예도 드물지 않나 싶다.

▦ 자동화기로 무장한 범인 1명이 10여분 만에 무려 500여명의 사상자를 낸 지난해 10월 라스베이거스 총기 난사를 비롯해 미국에서는 거의 매년 재난적인 총기사고가 발생한다. 그 때마다 총기 규제론이 나오지만 번번이 힘을 잃고 만다. 절실해 보이는 총기 규제가 좀처럼 강화되지 못하는 이유를 곤잘레스는 미국 정치권과 미국총기협회(NRA) 등의 유착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 학생이 트럼프에게 “묻겠습니다. NRA로부터 얼마를 받았느냐고!”라며 직격탄을 날린 이유이기도 하다.

▦ 총기제조ㆍ유통업체가 주도하는 NRA는 미국에서도 정치적 영향력이 가장 강력한 단체로 꼽힌다. 2016년 대선에서는 트럼프 캠프에 3,000만 달러를 후원했다는 설이 나올 정도로 자금력도 막강하다. 하지만 단순히 총기업계의 자금과 로비력 만으로 NRA의 영향력이 형성된 건 아니다. 그보다는 독립전쟁, 인디언의 저항과 무법자들이 판쳤던 개척시대 등을 거치며 총기 보유를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는 최후의 자위적 수단’으로 여기는 전통적 이념에 대한 미국인들의 폭넓은 공감이 더 큰 힘이 돼왔다.

▦ 총기 보유권은 미국 헌법에도 엄연히 명문화 되어 있다. 수정헌법 2조는 ‘민병은 자유로운 주의 안보에 필요하므로 무기를 휴대하고 소장하는 국민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고 돼있다. 이번 플로리다 참사와 곤잘레스 연설을 계기로 수많은 미국 청소년들이 백악관 앞 총기 규제 시위에 참여하는 등 총기 규제론이 다시 들끓는 모습이다. 하지만 총기 보유를 자유로운 개인의 마지막 권리로 여기는 절반의 완강한 미국인들은 이번에도 고집스레 저항할 것이다. 영화 ‘벤허’의 명배우 찰톤 헤스톤이 한 때 “나의 차가운 시체에서 총을 빼앗아 가라!”고 외쳤던 것처럼.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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