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민규의 은메달 소식에 빙상 관계자와 전문가들도 적잖이 놀랐을 것이다. 마치 26년 전 알베르빌(1992년) 올림픽에서 김윤만이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에 올림픽 첫 메달을 안긴 데자뷔와 같았다. 당시 김윤만(1,000m)도 1위에 0.01초 뒤진 은메달이었다.
이 정도 성적은 예상 못했지만 차민규는 나도 관심 있게 지켜 봤던 선수였다. 직접 가르친 적은 없지만 차민규는 쇼트트랙에서도 단거리에서 재능을 보였던 선수였고, 그래서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해서도 500m를 주 종목으로 삼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2, 3년 정도 잘 타다가 부상을 한 차례 당한 이후 다시 컨디션이 올라오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재기에 성공해 지난해 1월 열린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2관왕을 하면서 경기력은 다시 상승곡선을 그렸고, 평창올림픽 직전 열린 월드컵 3차 대회에서도 2위를 차지했다. (당시 개인 최고 기록을 0.5초나 단축한 34초 314의 기록으로 캐나다의 알렉스 보이베르-라크루아에 불과 0.001초 뒤져 2위 차지). 평창올림픽에서도 아깝게 금메달을 놓쳤지만, 빙상계 일각에서는 이미 모태범, 김준호보다 메달에 더 근접한 선수로 평가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기록이 나아졌고 메달권에도 들었지만, 월드컵 전체 성적은 다소 들쑥날쑥 했기 때문에 차민규를 주목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최근 성적만 보면 사실 그는 국내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단거리 1인자였다.
차민규는 쇼트트랙 시절부터 워낙 스타트가 좋았던 선수다. 그런데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하고 난 뒤 100m 랩타임이 생각만큼 나오지 않았다. 빠르면 9.72, 나머지는 9.8대였다. 초반만 잘 나오면 좋은 선수가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9.63을 찍는 걸 보고 올림픽을 위해 준비를 많이 한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스타트만 좋아서는 안 된다. 쇼트트랙에서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한 선수들은 이승훈처럼 대부분 장거리를 택하는데 차민규는 500m에 주력해 쇼트트랙 선수들의 최대 강점인 코너워크 기술을 십분 살릴 수 있었던 것 같다. 스피드스케이팅에서도 단거리에선 빠른 코너링이 최대 관건이다. 중국의 가오 팅유가 100m를 무려 9.47에 끊었지만 동메달에 그친 것에서 보듯 차민규는 쇼트트랙에서 갈고 닦은 기량을 바탕으로 나머지 400m 구간에서도 군더더기 없이 거의 완벽하게 스케이트를 지쳤다.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이 완전히 다른 종목이라는 건 평창올림픽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을 것이다. 기술적인 차이도 많지만 쇼트트랙은 몸싸움이 많은 종목인 반면 스피드스케이팅은 자신과 싸움이기에 성격도 잘 맞아야 한다.
이제 올림픽 은메달을 딴 차민규는 최고 전성기를 향해 가고 있는 느낌이다. 차민규 나름대로의 리듬을 타는 움직임일 수도 있지만, 스케이팅 때 상체가 약간 흔들리는 모습이 약간 걱정되기는 한다. 100m 기록을 조금 더 끌어 올리고 이런 부분을 보완하면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 도전은 충분해 보인다. 김관규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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