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의 성폭력 폭로가 계속되고 있다.
"성폭행 혐의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폭행은 아니다", "극단 내에서 18년 가까이 생활하며 관행적으로 일어나는 행태다", "물리적인 제압 없이 상호 간 믿고 존중했다" 이윤택 예술감독이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입장이자 사과다.
이날 그는 자신을 둘러싼 성폭력 논란과 관련해 고개 숙여 반성의 뜻을 내비쳤다. "내 죄에 법적 책임을 포함, 어떤 벌도 달게 받겠다"라며 말이다. 그러나 정작 가장 중요한 성폭력 여부에 대해서는 면피성 짙은 답변만을 내놓으며 피해자들의 가슴에 다시 한번 못을 박았다.
이윤택 예술감독은 "성폭행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성관계는 있었지만 물리적인 폭력이 없었다"라고 주장했다. 또 "극단에서 18년 가까이 진행된 관행, 관습적으로 생겨난 나쁜 행태라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그의 발언은 피해자들의 용기 섞인 목소리를 한순간의 잡음으로 치부하는 것과 같았다.
과연 평범한 단원일 뿐인 배우들이 '제왕적 권한'을 가진 이윤택 예술감독이라는 존재와 동일한 입장으로 상호 작용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아울러 이윤택 예술감독의 제안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 잇따르는 부당한 처우는 단원 배우들에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했을 터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강제성 여부를 판단했다는 점도 비판을 사고 있다.
또 이윤택 예술감독은 성폭력이라는 무거운 범죄를 연극계의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폭로가 없었더라면 앞으로도 계속됐을 관행으로 둔갑시켰다. 사건에서 한발 물러나 문화적 관습이라는 허울 뒤에 숨으려는 태도를 보인 것. 이는 순수하게 연극에 임하고 있는 예술인들을 모욕하는 뜻 그리고 숨은 가해자가 더 있을 수도 있다는 의미와 맞닿아 보였다.
법적 책임을 지겠다는 이윤택 예술감독의 주장에는 진정성이 결여됐다. 피해자들이 폭로한 사건들 대부분은 공소시효가 지났기에 이윤택 예술감독이 법적 수사를 받아 응당한 죗값을 치를 가능성이 적다. 이윤택 예술감독이 진심을 다해 피해자들에 사과를 건넬 마음이 있었더라면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외에도 그는 SNS 폭로글에는 "사실이 아닌 부분도 있다"고, 자수할 생각이 있냐는 질문에는 "모르겠다"고, 사과받는 이는 "특정인이 아닌 연극계 전체"라고 면피성 발언만 일삼았다. 이윤택 예술감독의 변명은 결국 피해자들의 분통만 샀을 뿐이었다.
김은지 기자 dddddv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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