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대한민국 선수들의 아리랑 연기가 평창 동계올림픽 은반 위에서 펼쳐졌다. 비록 메달권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꿈에 그리던 올림픽 아이스댄스 결선 무대에서 사상 최고 성적을 올리며 가슴 뭉클한 감동을 선사했다.
민유라(23)ㆍ알렉산더 겜린(25)조는 20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평창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아이스댄스 결선(프리댄스)에서 86.52점(기술 44.61, 예술 41.91)으로 전날 쇼트 댄스 점수(61.22)를 합해 총점 147.74점을 얻어 18위를 차지했다. 한국 선수가 올림픽 아이스댄스 결선에 오른 것은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올림픽(양태화-이천군ㆍ24위) 이후 16년 만이다.
민유라ㆍ겜린이 연기를 위해 재킷을 벗는 순간부터 관중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올림픽 피겨 무대에서 처음으로 한복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민유라는 자줏빛 치마와 분홍색 저고리를, 겜린은 하늘색 저고리를 입었다. 다양한 움직임을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몸에 딱 맞게 개량했다. 국내 대회에서는 선수들이 가끔 한복을 입은 적이 있지만 올림픽에서는 처음이다.
민유라ㆍ겜린은 한국 무용을 연상시키는 손짓으로 연기를 시작, 콤비네이션 스핀, 스트레이트 라인 리프트 등 고난도 연기를 실수 없이 펼쳤다. 거침없는 성격 탓에 ‘명랑 커플’로 불리는 민유라ㆍ겜린은 9가지 기술 과제를 모두 끝낸 뒤 은반에 앉아 한 손을 들어 올리며 연기를 마쳤다. 4분 가량 흘러나온 배경 음악으로는 가수 소향의 홀로 아리랑이 흘렀다. 1990년 발매한 서유석의 곡을 리메이크한 곡이다. 다만 가사 중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는 부분이 2초가량 삭제됐다. 다른 국제대회에서는 별탈 없이 사용했지만, 정치적 논란에 민감한 올림픽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코치진은 “심판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음악” 이라는 이유로 두 사람의 선택을 만류했지만 ‘전 세계에 한국을 알리겠다’는 민유라ㆍ겜린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이들은 배경음악을 아리랑으로 하겠다면 의상은 현대적으로 입으라는 코치진의 권고도 뿌리치고 한복을 고집했다.
겜린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완벽한 연기는 아니었지만 기쁘다. 기분 좋다”라고 말했다. 민유라도 “팬들의 응원이 너무 좋아서 정말 쉽고 마음 편하게 할 수 있었다”면서 “아리랑이 클라이맥스로 향할 때 연기를 하는 나도 큰 감동을 느꼈다”고 했다. 민유라는 미국에서 자란 이민 2세고 겜린은 미국 출신으로 귀화 선수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민유라지만 “넌 한국 사람”이라는 어머니의 가르침 속에 뿌리를 잊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피겨 여왕’ 김연아도 이날 현장을 찾아 민유라-겜린의 연기에 박수를 보내며 이들을 성원했다. 민유라는 “(김연아 선수가) 올 줄 몰랐는데 관중석에 앉아 있는 것을 봤다”면서 “너무 좋았다”며 아이처럼 즐거워했다.
강릉=강주형 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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