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산업생태계의 복원은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며 성공하기도 쉽지 않다. 최근 한국은행 지역경제보고서에 실린 영국의 맨체스터시 얘기는 드문 성공 사례다. 이곳은 18세기 산업혁명 당시 방적도시로 불렸던 산업중심지였다. 20세기 들어 신흥공업국 등장으로 산업경쟁력을 상실했고 도시도 피폐해졌다. 그런데, 최근 인구가 다시 늘기 시작했다. 시의회의 실용주의적 리더십 아래 서비스산업을 꾸준히 유치했기 때문이다.
최근 경제 컬럼에서 ‘구조조정’이란 단어가 빈번히 등장한다. 미시적으로 기업과 산업 구조를 혁신해서 거시경제정책이 효과를 충분히 발휘할 경제토양을 만들자는 뜻으로 읽힌다. 구조조정이란 대체로 비효율적인 기업이나 성장성이 불투명한 사업을 정리해서 지속 가능한 사업구조로 만들고, 수익성을 개선하는 과정을 말한다.
구조조정 대상인 부실기업이 많아질수록 관련 산업의 발전을 저해한다. 부실기업 증가는 총요소생산성을 하락시키고, 동종 산업 내 정상기업의 설비투자나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 1990년대 일본의 장기침체를 유발한 주요 요인의 하나로 저생산성 기업의 퇴출지연이 지적된다.
2월 들어 주요국 증시가 동시에 폭락했다. 미국의 임금상승률이 예상보다 높아지자 미 연준이 금리인상 속도를 높일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국내 금리도 상향조정 압력을 받게 된다. 한은에 따르면, 잠재적인 부실기업(이자보상 배율 1미만 기업)의 비중은 현재 33.0%이다. 금리상승 환경에서 부실기업이 더 늘지 않으려면 기업 구조조정이 속도를 내어야 함은 자명하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새로운 기업구조조정 추진방향’을 밝혔다. 부실 예방과 선제적 경쟁력 강화, 시장중심의 구조조정 그리고 금융 논리와 산업적 고려의 균형화 등 기본 방향을 천명한 바 있다. 그런데, 금년 6월 만료되는 워크아웃의 근거법인 기업구조촉진법 처리 방향이나, 일부 조선업체들을 살리는 문제 등으로 정부의 구조조정 의지에 대한 논란의 불이 지펴졌다.
효율적 구조조정의 절대적 공식은 없다. 기업이 처한 상황과 이해관계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금융과 산업 양 측면의 균형유지론은 이상론에 가깝다. 특정 기업의 회생 여부보다는 관련 산업전체의 생태계가 유지되느냐 하는 포괄적 문제를 놓고 검토해야 한다. 기업의 회생가능성 판단도 경제성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제도적 환경 개선도 급선무다. 잘 설계된 재교육 및 재취업 지원정책이 요구되며, 구조조정 전문회사 육성도 시급하다. 산업내 인수합병(M&A)을 활성화해 생태계를 스스로 보존하려는 노력도 중요하다. 맨체스터시가 주는 교훈은 기존 산업이 성숙화 단계에 이르기 오래 전부터 신산업을 착근시키는 것이 제비용을 최소화하는 지름길이다.
기업은 구조조정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부실을 예방하고 경기사이클 변화에 내성이 강한 기업구조를 구축해야 가능하다. 그래야만 구조조정을 ‘제 때’에 할 수 있으며 성공 확률도 높인다. 사업재편이 필요한 기업이 선제적으로 활용하도록 기업활력법의 적용 범위도 넓혀져야 한다. 구조조정을 할 때에는 철저한 자구노력을 선행하고, 엄정한 손실분담 원칙도 세워야 한다. 그래야만, 사내ㆍ외 이해관계자의 협조를 얻고, 국민 경제의 비용부담을 최소화하며 동종 산업의 피해도 줄일 수 있다.
에드먼드 펠프스교수의 지론은 구조조정 방향을 시사해 준다. 그는 미국 콜럼비아대 교수며 2006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그의 저서 ‘대번영의 조건’(2016)에서 금융위기 이후 쇠락해진 서구경제권이 활력을 되찾는 방안을 심도 있게 서술했다. 모두에게 좋은 자본주의를 위해서는 단기주의나 코포라티즘(corporatism)을 버려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경제의 역동성을 복원해야 혁신을 늘리고 매력적인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보았다.
정순원 전 금융통화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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