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성 노동자 12% “성폭력 피해”
‘한국말 못 해서’ ‘불이익 걱정’
대부분 피해 사실 알리지 않아
“경찰 등 기관 도움 필요” 지적
#2
임신 여성에 중절수술 강요도
“일하러 오면서 임신 하고 오냐
피해 입혔으니 고향에 보내겠다”
농장주가 협박 후 금품 요구도
캄보디아 출신 여성 외국인 노동자 멩 썸낭(30ㆍ가명)씨는 2016년 9월부터 지난 1월까지 1년 5개월간 경기 포천의 한 비닐하우스 농장에서 일하며 농장주의 끊임없는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 지난달 31일 의정부노동청 근로개선지도과에 제출된 진정서에는 여성 외국인 노동자 썸낭씨가 한국의 일터에서 겪었던 성폭력과 임금착취 현장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었다.
썸낭씨는 인근 비닐하우스에서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하루 12시간 동안 채소를 재배하면서 한 달에 이틀만 쉬었다. 이들은 농장 인근 비닐하우스를 개조한 가건물에서 살았다. 썸낭씨도 여기서 다른 여성 외국인 노동자와 한 방을 썼다.
열악한 근무환경과 조건에 더해 썸낭씨를 지속적으로 괴롭힌 것은 농장주의 날이 갈수록 강도를 더해가는 성폭력이었다. 고용주는 그가 일한 지 3개월째부터 여성 노동자들의 숙소를 마음대로 드나들기 시작했다.
진정서에 따르면 이후 농장주는 상습적으로 썸낭씨에게 입맞춤을 강요했다. 지난해 5월에는 방에서 혼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는 썸낭씨의 몸 위로 올라타고는 어깨를 짓누르며 입맞춤을 강요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썸낭씨는 “안돼! 사장님 안돼요! 안돼요!”라고 소리를 지르며 저항했다. 화장실에 있던 다른 여성 노동자가 비명소리를 듣고 방으로 돌아와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농장주는 물러났다.
성폭력은 이후 노골화됐다. 지난해 12월부터 농장주는 “사장님 돈 많아. 모텔에 가자. 얼마 줘”라며 썸낭씨에게 수시로 성관계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지난달 14일 그의 룸메이트가 입원한 병원에 병문안가기 위해 농장주의 차량으로 둘만 이동하는 상황에서도 농장주는 “얼마 줄까. 와이프 해. 내 와이프 하면 피자도 먹어, 갈비도 먹어, 해장국도 먹어. 다 먹게 해줄게. 와이프 해”라며 성관계를 요구했다. 썸낭씨는 “안돼요. 사장님, 사모님 있어요. 무서워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썸낭씨는 지난달 27일 룸메이트가 결핵으로 해고되면서 환자와 한 방에 지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임신한 여성 외국인 노동자에게 농장주가 임신중절 수술을 강요하거나 임신을 핑계로 금품을 요구한 사례도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경남 밀양의 한 깻잎 농장에서 일하던 쏙 삐썻(가명)씨는 3개월이 지난 12월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됐다. 그의 농장주는 매일 10시간씩 일을 시키고 휴일은 겨우 한 달에 이틀을 줬다. 매일 수십 박스의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허리를 굽히고 깻잎을 따야 했던 삐썻씨는 농장주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고 심하게 다그치지 말아줄 것을 요청했으나 돌아온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농장주는 “한국에 일하러 오면서 어떻게 임신을 하고 오느냐. 이런 불량품을 소개한 노동부에 따져야겠어”라고 불평을 하고, 삐썻씨에게는 “임신중절을 하지 않으면 고향에 보내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삐썻씨는 월급 130만원을 모은 돈으로 수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 몸도 성치 않은 그에게 농장주는 “네가 나에게 피해를 입혔으니 돈을 내놓고 나가라”고까지 했다. 현재 삐썻씨는 농장을 나온 상태다.
여성 외국인 노동자 대다수는 농장주의 성폭력을 경찰 등 외부 기관에 알리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12월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이주여성 농업노동자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 보고회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농업분야 여성 외국인 노동자(202명 설문) 12.4%가 성폭력 피해를 당한 적 있다고 답했으며, 36.2%가 다른 사람의 피해 경험을 들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피해 경험이 있는 사람 중 90.9%가 경찰 등 외부 기관에 도움을 청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한국말을 잘 못해서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 지 몰라서 ▦내 말을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아서 ▦일터 불이익에 대한 걱정 등으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의 거주 장소가 고립된 가건물이어서 농장주의 자동차 등 이동수단 없이 시내로 나갈 수 없을 정도로 외부기관과 접촉이 어려운 점, 성폭력 피해 경험을 상담사에게 말하기 꺼려하는 점 등도 성폭력 피해에 대한 대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이유로 지적됐다. 더구나 현장에서는 성폭력 진정을 하자 “고용노동부 감독관이 ‘선례도, 판례도 없으니 진정서에서 빼달라’고 이야기했다”는 말도 나온다.
강혜숙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여성 외국인 노동자들은 성폭력 피해를 입어도 어디에 호소해야 할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데다 한 달 월급 받아 바로 고향의 가족에게 보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신고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라며 “성폭력 때문에 작업장을 옮기려면 노동청에 직접 가 작업장 변경 신고를 해야 하는데, 피해자 혼자 이를 처리하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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