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강원 평창군 용평알파인경기장에서 열린 알파인스키 여자 회전. 북한의 김련향(26)이 힘차게 질주를 시작했다. 그 때 슬로프에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어서, 서로 사랑하는 한 맘이 되자.” 1988년 서울올림픽 공식주제가였던 ‘손에 손잡고’ 였다.
비록 최하위였지만 결승선을 통과한 그의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관람석에선 북한 응원단의 “우리는 하나다”라는 응원 구호가 울려 퍼졌다.
북한 스키 선수의 질주에 맞춰 ‘손에 손잡고’를 튼 이는 원래 바이애슬론 종목 음악 감독을 맡고 있는 DJ 제이드(30)다. 청담동, 이태원 일대에서 10년째 DJ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지난해 10월 유명 프로듀서겸 작곡가 돈스파이크(41)가 이끄는 평창올림픽 DJ 군단에 합류했다. 제이드는 19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경기를 보러 온 갤러리들에게 더 쾌적하고 편안한 관람 환경을 제공하고 경기에 집중할 수 있는 요소를 준비해주는 것이 음악 감독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2018평창동계올림픽 경기가 펼쳐지는 각 경기장에서는 SPP(스포츠 프리젠테이션) 음악 감독을 맡은 DJ들 11명이 시의적절한 음악을 틀며 관객들의 흥을 돋구고 있다. 대회 조직위원회에 따르면 올림픽 기간 경기장에 재생되는 음악은 총 8,000여곡에 이른다.
수많은 곡 중 단연 으뜸은 싸이의 ‘강남스타일’. “분위기를 띄워야 할 때 마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노래가 강남스타일이에요. 남녀노소, 외국인 한국인 가릴 것 없이 모두들 열광하는 걸 보고 이 노래의 위력을 다시 느꼈어요. 다들 이 노래만 나오면 두 손을 포개고 말 춤을 추더라고요.”
DJ들은 각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포착해 시의 적절한 음악으로 분위기를 이끈다. “예를 들어 한국 단체 관람객들이 많으면 신해철의 ‘그대에게’ 같은 한국 노래들을 많이 틀고, 넘어진 선수를 격려하고 싶을 때 DJ들이 적절한 노래를 트는 식이에요. 처음에는 이게 DJ가 할 수 있는 일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직접 해 보니 DJ이니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던 그에게도 특별한 경험을 할 기회가 찾아왔다. 강풍으로 순연된 알파인스키 여자 회전 경기가 16일에 펼쳐진 탓에, 알파인스키 두 경기가 한 날 치러진 것. 알파인스키 담당 음악 감독을 돕기 위해 감독석에 앉은 그는 김련향 순서에 반드시 ‘손에 손 잡고’를 틀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경기 중에는 장내아나운서의 멘트가 쉴 새 없이 나오기 때문에 가사 없는 노래를 트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번만큼은 가사가 절실했다. 베뉴 프로듀서에게 상황을 설명했고, 흔쾌히 승낙을 얻어냈다.
“정말로 가슴이 벅찼어요. 뭉클한 순간이더라고요. 슬로프에도 소리가 나가기 때문에 선수들이 들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김련향 선수가 제 선곡을 들었다면 저와 같은 기분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평창=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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