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사진=김연아 인스타그램 영상 캡처.
[한국스포츠경제 박종민] ‘피겨여왕’ 김연아(28)는 현역 시절 연기를 끝낸 뒤 ‘인형 세례’를 맞곤 했다. 프리스케이팅 연기 후 짓는 벅찬 듯한 표정과 인형 세례는 ‘김연아 연기’의 에필로그와 같았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나선 한국 남자 피겨 간판 차준환(17ㆍ휘문고)은 2010 밴쿠버 대회 은반을 금빛으로 수놓은 김연아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차준환은 17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평창올림픽 피겨 남자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11번째 연기자로 출전해 쿼드러플(4회전) 점프에서 실수를 범했지만, 프리에서 기술점수(TES) 84.94점에 예술점수(PCS) 81.22점, 감점 1을 합쳐 165.16점을 얻었다. 전날 쇼트프로그램에서 자신의 국제빙상경기연맹(ISU) 공인 최고점(83.43점)을 획득한 그는 프리에서도 기존 최고점(160.13점)을 경신했다. 쇼트와 프리 점수를 합친 총점 248.59점 역시 자신의 기존 최고점(242.45점)을 6.14점이나 끌어올린 신기록이다. 차준환은 남자싱글에서 최종 15위를 차지, 1994년 릴레함메르 대회 때 정성일(49)이 작성한 한국 역대 올림픽 남자싱글 최고 순위(17위)를 24년 만에 넘어섰다.
쇼트 연기가 펼쳐진 16일, 경기장에서 느낀 차준환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메달권이나 ‘톱10’ 진입 가능성은 높지 않았지만, ‘차준환’이라고 적힌 플래카드와 태극기를 들고 있는 관중은 상당히 많았다. 연습 연기에서는 “차준환 파이팅”이라는 응원 목소리가 울려 퍼졌으며 배경음악 ‘집시 댄스(Gypsy Dance)' 리듬에 맞춘 단체 박수 소리도 터져 나왔다.
실전에서 혼신의 연기를 마무리한 그는 응원해 준 관중에게 90도 인사를 건네며 감사해 했다. 그러자 관람석을 메운 다수의 관중은 인형을 은반 위로 던졌다. 이 때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치는 브라이언 오서(47ㆍ캐나다) 코치의 모습이 전광판에 등장하면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김연아의 밴쿠버 대회 연기 후 장면을 추억하게 했다. 오서 코치는 밴쿠버 대회 당시 김연아의 코치였다.
차준환./사진=박종민 기자.
차준환은 믹스트존 인터뷰에서 "관중의 응원 덕분에 연기를 더 즐길 수 있었다"고 겸손해 했다.
이번 대회 우승자는 하뉴 유즈루(24ㆍ일본)였다. 그는 총점 317.85점(쇼트 111.68점ㆍ프리 206.17점)으로 정상에 섰다. 1948년 생모리츠 대회와 1952년 오슬로 대회에서 2연패를 달성했던 딕 버튼(89ㆍ미국)에 이어 무려 66년 만에 올림픽 남자싱글에서 2연패를 거둔 주인공이 됐다.
비록 ‘톱10’에 들지 못했지만, 차준환은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 그는 온갖 악재를 극복하고 좋은 성적을 기록하며 자신감을 얻었다. 시니어로 데뷔한 올 시즌 그는 고관절, 발목 부상과 부츠 문제 등으로 고생했다. 때문에 지난해 7월부터 시작된 평창올림픽 선발전에서 1차 3위, 2차 2위로 불안한 중간 성적을 보였다. 3차 선발전에서 프리 음악과 구성을 바꾸는 승부수를 띄워 가까스로 16년 만에 올림픽 남자싱글에 출전하는 주인공이 됐으나, 대회 직전 독감에 걸리며 다시 우려를 샀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한 것이 개인적인 수확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피겨계에도 이정표를 세웠다. 차준환의 성적은 ‘한국 피겨=김연아’라는 공식에 남자 피겨가 비집고 들어갈 틈을 만들어냈다. 현장에서 본 차준환의 연기는 아직 2010년 김연아만큼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색깔이 있었고 매력도 있었다. ‘남자 김연아’에서 ‘차준환’ 그 자체로 거듭날 4년 후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강릉=박종민 기자 mini@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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