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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ㆍ금 그리고 은… 그녀의 올림픽은 아름다웠다

입력
2018.02.19 04:4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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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화 빙속 500m 은메달

고질적 부상ㆍ부담 극복하고

3개 대회 연속 금ㆍ금ㆍ은

올림픽 3연패 실패했지만

10년째 최정상 기량 선보여

딸 부담 가질까 TV만 보다가

올림픽 경기 처음 찾은 부모

“여한 없다… 고생했다” 눈시울

18일 오후 강원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2위를 기록한 이상화가 1위 일본의 고다이라와 함께 트랙을 돌고 있다. 강릉=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18일 오후 강원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2위를 기록한 이상화가 1위 일본의 고다이라와 함께 트랙을 돌고 있다. 강릉=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올림픽 3연패 문턱에서 좌절했지만 이상화(29ㆍ스포츠토토)에게는 ‘빙속여제’란 타이틀이 여전히 아깝지 않다.

그는 아시아 선수로는 남녀 통틀어 처음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고 2013년에는 한 해에만 4차례나 세계신기록을 갈아치우는 역사를 새로 썼다. 현 세계신기록(36초36) 보유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상화가 진짜 위대한 건 2009년부터 10년 째 단거리 종목에서 세계 최정상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니 볼프(39ㆍ독일), 왕베이싱(33ㆍ중국) 등 많은 선수들은 이 종목에서 세계를 주름잡고도 장강의 뒷물에 밀리듯 금세 사라져갔다. 그러나 이상화는 정상의 자리를 꿋꿋하게 지켰다. 이상화가 2010년 밴쿠버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을 딸 때 대표팀 감독이었던 김관규 한국일보 해설위원(평창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위원장)은 “이상화 같은 선수는 본 적이 없다”며 “올림픽에 4번 연속 출전해(2006년 토리노올림픽은 5위) 2연패를 이룬데다 3연패까지 유력했던 선수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고 밝혔다. 이어 “이상화는 기술적으로도 완벽하지만 10년째 저런 기량을 유지하려면 일반인은 상상도 못할 정도의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평했다.

더 놀라운 건 이상화의 양쪽 다리가 오래 전부터 정상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연골이 닳아 없어져 계속 물이 차는 왼쪽 무릎은 부상이라 말하기도 애매할 정도로 오래 달고 산 고질병이다. 2014년 소치올림픽을 앞두고는 오른쪽 다리까지 하지정맥류로 애를 먹였다. 이상화 아버지 이우근(61)씨는 “소치올림픽 때 금메달을 따고 상화가 코치에게 달려가는데 다리가 휘청거리는 걸 봤다. ‘정상이 아닌 저 다리로 2연패를 했구나’ 싶어 가슴이 미어졌다”고 회상했다. 평소 통증이 심해도 가족에게 내색 한 번 한 적 없던 이상화는 소치올림픽이 끝난 지 얼마 안 돼 “아빠, 머리는 앞으로 가라고 하는데 발이 안 움직여”라고 털어놔 이씨 마음을 아프게 했다.

다행히 이상화는 지난 해 3월 하지정맥류 수술을 받은 뒤 회복세로 돌아섰다. 지난 해 11월 고다이라와 격차가 1초 가까이 났지만 한 달 뒤 0.2초까지 줄였다. 그러나 진검 승부인 평창 무대에서 끝내 역전에 실패했다. 아버지 이씨는 “요즘 상화의 스케이팅 자세가 전성기 시절과 거의 비슷하게 안정을 찾았고 좌우 밸런스도 잘 잡혔다. 컨디션을 끌어올릴 시간이 조금 만 더 있었다면….”하며 아쉬움에 말을 잇지 못했다.

2016년 5월 경기도 양평 자택에서 찍은 이상화 가족 사진. 왼쪽부터 이상화 오빠 이상준씨, 아버지 이우근씨, 어머니 김인순씨, 이상화. 오빠가 안고 있는 반려견이 '샛별이', 이상화 앞에 덩치 큰 골든 리트리버가 '피카'다. 이우근씨 제공
2016년 5월 경기도 양평 자택에서 찍은 이상화 가족 사진. 왼쪽부터 이상화 오빠 이상준씨, 아버지 이우근씨, 어머니 김인순씨, 이상화. 오빠가 안고 있는 반려견이 '샛별이', 이상화 앞에 덩치 큰 골든 리트리버가 '피카'다. 이우근씨 제공

이상화 아버지와 어머니(김인순ㆍ57) 는 지난 13일 딸이 평소 아끼는 반려견 ‘샛별이’와 ‘피카’를 데리고 강릉선수촌에 다녀왔다. 샛별이는 이상화가 처음 성인 국제 무대에서 동메달을 딴 2005년부터 13년 째 한 식구이고, 피카는 3년 전 이상화가 직접 캐나다에서 데려온 덩치 큰 골든 리트리버다. 가족의 만남은 30분 남짓이었고 특별한 이야기도 없었다. 이씨는 “중요한 대회 앞두고 우리는 경기 이야기는 아예 안 한다. 그냥 상화 얼굴만 잠깐 보고 왔다”고 했다.

이씨 부부가 딸의 올림픽 경기를 직접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2010년 밴쿠버, 2014년 소치 때는 이상화가 부담을 가질까 봐 집에서 TV로 응원했다. 이씨는 경기 뒤 “우리 딸! 열심히 했어. 올림픽에서 너의 모습을 실제로 보는 것 자체가 감동이야. 지금 성적도 잘했어. 자랑스러워”라고 격려했다.

‘상화(相花)’, 서로 꽃을 피우라는 뜻이다. 아버지가 직접 지은 이름이다. 이씨는 “‘상’자 돌림에 딸이라 꽃 화자를 붙였는데 작명 풀이를 해보니 초중장년까지 다 좋다고 나왔다”고 했다. 올림픽 3연패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상화는 세계 빙속 역사에서 ‘지지 않을 꽃’으로 남을 것이다.

강릉=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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