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생명ㆍ건강 보호 위해 필요”
고용부, 상고 않고 수용하기로
삼성 온양 반도체 공장 첫 공개
근로자가 백혈병으로 숨졌지만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내용이 알려지지 않았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 보고서가 산업재해 신청을 한 근로자나 유족에게 전면 공개된다. 지금까지는 기업의 영업비밀 등을 이유로 부분 공개만 해왔다. 정부는 관련 지침도 곧 개정할 예정이어서 직업병 피해 근로자의 산재 입증이 한층 수월해질 전망이다.
고용노동부는 고(故) 이범우씨 유족이 고용부 천안지청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소송 2심에서 유족의 손을 들어준 지난 1일 대전고법의 판결에 대해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고 수용하기로 했다고 18일 밝혔다. 이에 따라 고용부는 이씨가 근무했던 삼성전자 온양공장의 2007~14년 작업환경측정 결과보고서의 전체 내용을 유족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작업환경측정 결과보고서란 산업안전보건법 상 발암물질 등 190종의 유해 물질을 다루는 작업장에 대해 사업주가 6개월마다 유해인자를 조사한 후 지방고용노동관서에 제출하는 보고서다.
1986년 삼성 반도체 부천공장에 입사한 후 1991년 온양공장으로 근무지를 옮겨 23년간 근무하던 이씨는 2014년 8월 급성 림프구 백혈병으로 숨졌다. 유족들은 2개월 뒤 이씨의 백혈병이 산업재해임을 입증하기 위해 천안지청에 작업환경측정 결과보고서 공개를 신청했으나 거부당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중앙행정심판위원회와 1심(대전지법)은 모두 유족 패소 판결을 내렸다. 해당 보고서에 포함된 ‘측정위치도’ 등에 공장의 공정 간 배열, 설비의 기종 및 숫자, 생산능력 등이 기재돼 공개될 경우 삼성전자의 영업비밀이 침해될 수 있다는 것이 주된 근거였다. 하지만 2심인 대전지법은 “측정위치도가 설령 기업의 경영ㆍ영업상 비밀에 해당한다 하더라도 정보공개법상 사람의 생명ㆍ신체 또는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공개할 필요가 있는 정보에 해당한다”며 원심을 뒤집었다.
고용부는 이번 판결을 참조해 향후 작업환경측정 결과보고서를 적극 공개하는 한편, 그간 논란이 됐던 안전보건자료 정보공개지침을 개정해 산재 피해 근로자들의 입증 부담을 줄여나갈 방침이다. 앞서 고용부는 지침을 통해 작업 공정별 화학물질, 공정 및 설비의 배치도ㆍ근로자 수 등을 비공개 대상 정보로 규정했는데 노동계로부터 “기업의 이익 때문에 산재 입증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실제로 삼성 반도체 화성공장에서 근무하다 지난 해 1월 급성골수성 백혈병으로 사망했던 고(故) 김기철씨 관련 작업환경측정 결과보고서를 고용부가 공개하면서 측정대상공정 등 핵심 정보를 제외시켰다는 지적이 나왔다.
반올림(반도체 노동자 건강과 인권지킴이)의 이종란 노무사는 “고용부의 이번 공개 결정은 이범우씨 가족의 산재 소송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반도체 공장에는 측정 대상 190종 외에 신물질도 많아 여전히 어려움은 있겠지만 보고서 공개로 산재 입증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신혜정 기자 arê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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