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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나는 그 곳에 있었다”

입력
2018.02.18 14:0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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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해온 것만큼만 하면 됩니다.” “끝까지 힘을 빼고 욕심을 버리고 편안하게 타면 됩니다. 물 흐르듯이.”

평정심을 강조하는 아나운서와 경기 해설자의 목소리에서 긴장감이 느껴졌다. 설날, 스켈레톤 남자 4차 주행 경기, 윤성빈 선수가 출발선에 선 순간이었다. 점심을 먹던 가족들의 시선이 일제히 텔레비전을 향했다. 윤 선수가 얇은 썰매 판 하나에 의지해 경사진 얼음 트랙 1,200m를 달리는 동안 가족들은 모두 먹는 것도 잊고 그의 질주를 응원했다.

금메달이었다! 윤 선수는 경기를 마치고 응원석을 향해 큰 절을 했다. 설날 온 국민에게 바친 금메달감 세배였다. 헬멧을 벗으니 아직 앳된 청년의 얼굴이 나왔다. 비인기 종목을 선택해 땀 흘려 훈련하고 금메달까지 따낸 눈부신 젊은이의 모습을 보니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평균시속 100km로 질주하는 선수를 바로 옆에서 응원하는 관중들이 부러웠다. 얼마 전 광고에서 본 평창올림픽 관객들의 감동이 괜한 허풍은 아니겠구나 고개가 끄덕여졌다. 대한항공은 평창올림픽 관람객들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생생한 현장 후기를 엮어 광고 영상으로 만들었다. 영상에는 개막식, 스키 점프, 스피드 스케이팅의 모습과 그 장면을 직접 목격한 관객의 소감이 자막으로 보여진다.

자막)성화에 불이 붙는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개회식은 컬러, 불꽃놀이, 환상적인 춤이 어우러진 최고의 이벤트였다.

입은 벌리고 있는데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의 경기는 절대 앉아서 볼 수 있는 경기가 아니었다.

NA)지금도 이어지는 평창동계올림픽의 현장후기들!

자막)#나는그곳에있었다

NA)그 감동적인 후기행렬에 당신도 동참하세요.

솔직히 설 명절이라 엄마와 형제들 가족이 한데 모인 자리가 아니었다면 그 시간에 올림픽 중계를 챙겨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차례를 지내고 세배한 후에는 밥, 과일, 차, 설거지, TV 시청. 잠시 쉬고 다시 밥, 과일, 차, 설거지가 반복되는 우리 가족의 비만유발 설날 풍경이 아니었다면 윤 선수의 금메달 소식은 저녁 뉴스에서나 만났을 터였다. 스켈레톤이 엎드려서 썰매를 타는 것이고 선수들이 4번씩 주행한다는 사실도 경기를 볼 때는 몰랐다. 그런데 스켈레톤을 보고 나니 루지가 궁금해지고 봅슬레이도 보고 싶어졌다. 컬링이니 노르딕이니 암호처럼 알쏭달쏭한 겨울올림픽 경기들이 펼쳐지는 현장에 나도 슬그머니 끼어들고 싶어졌다.

30년 전 88서울올림픽이 열렸을 때, 나는 그 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당시 군사정권의 지배자들은 80년대 내내 과도하게 올림픽을 준비했다. 올림픽은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이나 민주화의 목소리들을 억누르는 정치적 도구로 사용되었다. 올림픽 개최가 주는 이익이나 장점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유치 반대 시위에 참가하기도 했고 개최 반대 목소리에 내심 동조했다. 게다가 경기 중계시간을 고려하여 실시된 서머타임은 가뜩이나 아침잠이 많은 내게 또 하나의 악몽이었다.

지난 30년 많은 것이 바뀌었다. 대통령이 일곱 번 바뀌었고 시민들은 촛불의 힘을 경험했다. 1988년 올림픽에 참가하기는커녕 대한항공 여객기를 폭파하며 개최를 방해했던 북한은, 2018년에는 남북한 공동입장에 단일팀까지 만들어 협조를 했다. 우연한 공통점도 있다. 1988년 추석날 남자 유도에서 금메달을 딴 김재엽 선수는 한복을 입고 시상대에 올랐고, 2018년 설날 금메달을 딴 윤승빈 선수는 세배를 했다. 보고 싶지 않았던 올림픽에서 보고 싶은 올림픽까지 30년이 흐르는 동안··· 돌아보니 나는 착실히 늙었다. 그리고 2018년 지금 내 마음은 평창올림픽이 열리는 그 곳에 있다. 마음만 두지 말고, 더 늦기 전에 평창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는 둘째라도 보러 그 곳에 한 번 다녀와야겠다.

대한항공_TVCM_현장후기 편_2018_스토리보드 http://www.tvcf.co.kr/YCf/V.asp?Code=A000338313

대한항공_TVCM_현장후기 편_2018_인터넷 링크

정이숙 카피라이터ㆍ(주)프랜티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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