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쇼트트랙 서이라(26ㆍ화성시청)의 별명은 ‘랩 하는 스케이터’다.
그는 지난 해 7월 미디어데이에서 마이크를 잡고 랩 가사를 읊조리며 힙합그룹 다이나믹 듀오의 ‘야유회’를 불러 화제를 모았다. 올림픽이 끝난 뒤 팬들에게 자작 랩을 들려주겠다는 공약도 내걸었다.
서이라는 지난 10일 평창 동계올림픽 1500m 준결승에서 0.002초, 그야말로 간발의 차로 결승행이 좌절됐다. 속상할 법도 하지만 그는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꿀잼이었다. 여기 있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감사하다”고 웃음을 지었다.
17일 쇼트트랙 1000m에서도 행운의 여신은 서이라를 외면했다.
서이라를 비롯해 황대헌(19ㆍ부흥고), 임효준(22ㆍ한체대)이 준준결승에서 모두 한 조에 속한 것부터 불운이었다. 조 2위까지만 다음 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는 상황에서 서이라와 임효준이 살아남았고 두 선수는 준결승을 통과해 나란히 결승까지 올랐다.
결승에서 서이라와 임효준은 줄곧 뒤에서 역전의 기회를 엿보다가 두 바퀴를 남기고 추월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두 선수가 모두 중심을 잃으며 넘어지고 말았다. 포기하지 않고 곧바로 일어나 레이스를 마친 서이라가 3위를 하며 값진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임효준은 4위였다.
경기 뒤 역시 밝은 표정으로 공동취재구역에 온 서이라는 “나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 김선태 감독님과 코치진, 트레이너 선생님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된 것”이라며 “많은 분의 응원과 기도 덕분에 100% 이상의 힘을 낼 수 있지 않았나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결승선을 눈 앞에 두고 엉켜 넘어져 우승이 멀어진 상황에 대해서도 “쇼트트랙을 하다 보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개의치 않아 했다.
가장 힘든 경기는 역시 한국 선수끼리 맞붙은 준준결승이었다. 그는 “3명이 선의의 경쟁을 해서 누가 됐든 축하해주자는 생각으로 마음 편하게 임했다”고 털어놨다.
‘랩을 보여줄 때가 됐느냐’는 질문에는 한 동안 고민하다가 “랩은 영감이 와야 한다”고 쑥스럽게 웃은 뒤 “경기 다 끝나고 열심히 준비해서 보여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500m와 5000m 계주를 남겨 놓고 있는 서이라는 “계주는 무조건 잘 타고 싶다. 500m는 선수로서 목표는 당연히 금메달이지만 최선을 다해 좋은 경기 보여드리는 것이 우선”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강릉=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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