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 평가에 야동 돌려보는 건 다반사
남성 중심 의원실 문화에 고용 불안 겹쳐
피해 여성 보좌진 대놓고 문제제기 못해
정치권이 내부 자성 노력부터 기울여야
#”몸매에 자신 있나 봐.” 40대인 A보좌관이 내 가슴을 지그시 응시하며 말했다. 그날 사무실에는 우리 둘뿐이었고, 난 몸에 좀 달라붙는 옷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끈적한 시선이나 받으려고 입은 게 아니었다. 무척 불쾌했지만 드러낼 수 없었다. 그 사람은 내 직장상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익명을 빌어서라도 말하고 싶다.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투.’
#”까톡.” XXX의원실에서 함께 근무하는 보좌관이 ‘야동(야한 동영상)’을 보내왔다. 그는 “여자를 다룰 땐 이런 식으로 해야지”라며 낄낄댔다. 다들 히죽대며 웃는 걸 보니 사무실의 다른 남자 직원들에게도 보낸 모양이었다. 나도 남자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성 보좌진들도 많은데 국회에서 어떤 생각으로 이런 생활을 견디고 있는지 안쓰러워졌다. 그래서 나도 조용히 외친다. ‘미투.’
국회 보좌진은 흔히 우리 사회의 ‘갑’으로 불린다. 국회와 국회의원의 막강한 권한을 뒷배 삼아 수많은 관공서와 기업들의 숨통을 쥐락펴락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정감사나 주요 현안을 다루는 상임위가 열릴 때면 의원실 앞은 번호표를 뽑아야 할 정도로 북적댄다. 자연히 보좌진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미치는 영향력은 막강할 수밖에 없다.
그런 보좌진들이 ‘미투(Me Too)’ 운동’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물론 숨죽이면서 조용히. 자칫 물의를 일으켰다간 모시는 의원의 눈밖에 날 수 있다. 보좌진들은 별정직 공무원에 속하지만 스스로를 언제든 잘릴 수 있는 ‘임시 고용직’이라고 부른다. 인사권한을 전적으로 해당 의원이 갖고 있는 탓이다. 당장 오늘이라도 얼마든지 해고될 수 있다.
지난해까지 OOO의원실에서 인턴으로 근무했던 여성은 “국회에서 여성 보좌진이 당하는 언어 성폭력은 일상적”이라고 말했다. “어느 방 여비서가 제일 예쁘다”며 의원실 근무 보좌진들의 외모를 비교하는 건 다반사다. 특히 보좌진의 직급이 낮은 경우, 의원실을 찾아오는 외부인에게조차 수모를 겪곤 한다. 이 여성은 “의원님을 찾아온 공무원이나 기업 관계자들이 '내가 10살만 어렸으면 비서님 꼬셔보는 건데'라는 식으로 얼굴과 몸매를 평가하며 희롱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실제 국회 보좌진 가운데 말단인 ‘9급 비서직’의 여성 비율은 70%가 넘는다. 반면 최고 직급인 ‘4급’을 단 여성은 채 6%에 못 미친다. 보좌진 직급이 높아질수록 남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분위기는 남성 중심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조용히 ‘미투’를 외치는 보좌진의 목소리는 국회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활발하게 분출되고 있다. 한 보좌진은 “비서관이 은연중에, 그러나 습관적으로 하는 성희롱적 발언을 매번 아무 말 않고 참고 있는 우리 씩씩한 막내야! … 그건 잘못이 아니고, 우리는 너의 편이니까. 뉴스 보다 네 생각이 났어”라고 응원했다. 다른 보좌진은 “의원님들! 남의 일에만 용기 어쩌고 개혁 저쩌고 하지 마시고 국회 내 성추행, 성희롱 조사 한 번 해주세요!”라는 게시물을 올렸다.
최근 정치권에도 미투 열풍이 불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은 원내 대책회의를 ‘성평등 정책조정회의’로 진행하며 당 차원의 지원을 약속했다. 같은 날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기자회견을 열고 당내 성폭력 사건을 자진 공개하며 자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촉발된 검찰발 미투 운동에 정치권이 뒤늦게 가세하며 지원사격에 나서는 모양새다.
하지만 여전히 등잔 밑은 어둡다. 정치권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기에 앞서 국회 내 상황부터 먼저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순리라는 지적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16일 “미투 운동 관련 의혹에 대해 해당 기관이 철저하게 조사하고 대책을 내놓는 건 민주사회의 기본”이라며 “국회 내부의 권위적 문화나 성희롱ㆍ성폭력 실태에 대해 선제적으로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지호 인턴기자(성균관대 경영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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