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등 앓던 80대 김모 할머니
16세에 日 오카야마 연행돼 고초
남은 피해자들 평균 연령 91세
“살아 있을 때 사죄만 받게 해달라”
경기 광주시에 있는 나눔의 집에서 생활해 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모(88) 할머니가 14일 별세했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9명 중 생존자는 이제 30명뿐이다. 일본의 온전한 사과를 받지 못한 채 한 맺힌 생을 마감하고 있는 할머니들의 명예를 서둘러 회복시켜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나눔의 집은 이날 “뇌졸중과 중증 치매를 앓아 온 김 할머니가 오전 6시40분쯤 돌아가셨다”며 “유가족의 뜻에 따라 장례 절차나 신원 등은 모두 비공개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5일 숨진 임모(향년 89세) 할머니에 이어 올해 들어 벌써 두 번째다.
김 할머니는 16세인 1945년 일본 오카야마로 연행돼 일본군 위안부로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고 전혀졌다. 광복 후 고향으로 돌아와 2012년 10월부터 나눔의 집에서 머물렀다. 김 할머니의 별세로 생존 할머니는 단 30명으로 줄었다. 평균연령은 91세로 나이가 가장 적은 할머니는 85세, 최고령은 102세의 정복수 할머니다.
생존 할머니들은 위안부 피해자 쉼터에 거주하거나 요양병원 등에 입원해 있다. 사회의 불편한 시선을 우려해 피해자임을 알리지 않고 혼자 생활하는 분도 있지만, 고령인 탓에 대부분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 노인성 질환은 물론이고 더러 치매를 앓는 할머니들도 있다. 어린 나이에 위안소로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은 탓에 할머니들은 부인과 질환뿐 아니라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도 시달리고 있다.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는 강일출(90) 이옥선(91) 박옥선(94) 할머니 등 8명은 각자 방을 따로 쓰고 있다. 안신권 나눔의 집 소장은 “트라우마 때문에 함께 생활하는 것을 꺼리고 남을 믿지 못하는 할머니들이 많아서 독립적인 공간에서 지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힘겨운 삶을 버텨 내고 있는 생존 할머니들은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이른 시일 내에 받아 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할머니들은 박근혜 정부의 ‘12ㆍ28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도 서둘러 폐기하고 일본의 공식 사죄와 배상을 이끌어 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약속한 재협상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는 게 간절한 바람이다. 지난달 9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재협상은 없다”고 발표한 데 대해 분노한 이유다.
나눔의 집에 거주하는 또 다른 이옥선(88) 할머니는 “(일본은) 철모르던 사람 끌어가 총질, 칼질, 매질해 놓고 이제 와서 안 그랬다고 한다”며 “사는 동안 사죄만 받게 해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안 소장은 “남성 중심의 한국 사회에서 어떤 피해를 당했는지조차 말 못하는 그분들의 비참했던 삶에 대해 우리 사회가 책임을 지고 명예를 회복시켜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명식 기자 gija@hankookilbo.com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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