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설날을 앞두고 칼럼을 쓰자니 이 동요가 자연스레 입술에 맴돌아 흥얼거렸는데 그러고 보니 제가 칼럼을 쓰는 오늘은 우리의 설날이 아니고 까치의 설날이라는 생각이 들어 혼자 웃었습니다. 그리고 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양력설을 기해 칼럼을 쓴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벌써 그리고 또 음력설을 기해 칼럼을 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설날이 되면 양력설이건 음력설이건 새해 인사를 하는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는 음력설에 더 걸맞다는 느낌이 저만의 느낌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도 먼저 독자들께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를 드립니다. 제가 이렇게 인사드렸지만 저는 가끔 이런 인사를 받곤 합니다. ‘새해 복 많이 지으소서.’ 이 두 새해 인사가 생각하기에 따라 많이 다를 수도 있고 조금 다를 수도 있지만 아무튼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습니다. 복을 빈다는 면에서 공통점이 있고, 새해에는 복이 많기를 바란다는 면에서도 공통점이 있으며, 궁극적으로 받아서 많든 지어서 많든 복이 많아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면에서도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작년에 행복하지 않았으면 올해는 행복하시라는 인사이고, 작년에 행복했으면 올해도 행복하시라는 인사입니다.
그런데 새해에 복이 많기를 바라는 면에서는 같지만 어떻게 복이 많게 되고 행복할 것이냐에 있어서는 차이점이 큽니다. 복 많이 받으라는 것은 말 그대로 복을 누군가에게서 받아 행복하라는 것이고 복 많이 지으라는 것은 그야말로 논 농사 밭 농사를 짓듯이 자기가 복 농사를 잘 지어서 행복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행복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많이 다르다고 할 수 있고, 정반대라고도 할 수 있지요.
아무튼 우리는 전통적으로 복 많이 받으라고 인사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복 많이 받으라고 인사할 때 누구로부터 받으라고 특정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조상들은 복 많이 받으라고 하면서 복 주는 존재를 분명 생각했을 것이고, 그것이 조상으로 생각했을 겁니다. 조상신이 후손에게 복을 줄 거라고 믿었던 겁니다. 제가 아는 것이 정통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우리나라는 유교적 영향으로 인간이 죽고 난 뒤 완전히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4세대 백 년이 걸린다고 믿었습니다. 혼비백산(魂飛魄散), 곧 혼이 날아가고 백이 완전히 흩어지는데 100년이 걸리니까 1세대를 25년으로 쳐 4대 조상까지는 제사를 드려야 하고, 이렇게 제사를 드리면 조상들이 후손들에게 복을 주시리라는 믿음이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설 명절이 되면 가족이 모여 조상들께 같이 제사를 올리고 그런 다음 서로 절을 하며 조상의 복을 빌어 주었던 겁니다.
이에 비해 불가에서 복은 자기 스스로 짓는 것이라는 거지요. 자업자득(自業自得)과 스스로 성불(成佛)을 하는 종교에서 스스로 깨달아야 하고, 자기의 복은 신이건 사람이건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행불행을 누구에게 의지하지도 탓하지도 않는 성숙한 인간의 자세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인간의 행복에 대해 하느님을 믿는 저로서는 두 가지 자세를 다 긍정합니다. 스스로 복 농사를 짓는다 해도, 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는 하늘의 비와 햇빛을 잘 받아서 농사를 지어야 하듯 하늘이 주는 복을 잘 받는 것도 복 농사를 잘 짓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아무튼 올해 새해에는 복을 많이 받든 복 농사를 잘 짓든 복이 많아 행복하시기를 빕니다. 그리고 자기만 복이 많아 행복하지 않고 같이 행복하기 위해 이번 명절에는 가족에게는 물론 만나는 모든 사람과 특별히 어려운 이웃에게도 복을 빌어 주어 같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찬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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