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3분의 세계, 탱고
2030 여성 많은 일반 댄스와 달리
간단한 동작으로 즐길 수 있어
스무 살부터 50대 중년까지 다양
상대 배려 없이는 이내 스텝 꼬여
“출 때마다 인생 배우는 기분”
유럽ㆍ남미 밀롱가에서 춤추는 꿈도
1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아르헨티나 탱고 강습소인 ‘앙헬탱고’ 스튜디오. 20여 명의 성인 남녀가 전신거울 앞에 서 탱고 동작을 연습한다. 발레, 살사, 재즈댄스, 스윙처럼 20, 30대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일반적인 댄스 강습소와는 달리, 대학 입학을 앞둔 스무 살부터 40, 50대 중년까지 연령대가 다양하다. 김동우 앙헬탱고 원장은 “간단한 동작만 익히면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보니 남녀노소 탱고 스튜디오를 찾는다”고 말했다.
사실 탱고를 선택하기까지 고민을 많았다는 이들이 많다. 남녀가 몸을 마주대고 춤을 추는 일에 대한 선입견 탓에 강습소를 찾기까지 적잖은 용기가 필요했다는 것. 하지만 일단 탱고를 시작하면 고민은 이내 사라진다. 보통사람들이 땅게로스(Tanguerosㆍ탱고 추는 사람들)로 거듭난 사연을 들어봤다.
평생의 취미 탱고
40대 후반 마르코(남)씨는 일주일에 세 번 스튜디오를 찾는다. 어느새 탱고에 빠진 지 1년이 넘었다. 직장에서 관리자 직급인 그는 퇴근 후 곧장 탱고 강습소로 향한다. “오래 전부터 배우고 싶었지만 실행에 옮기기까진 시간이 걸렸죠. 남녀가 함께 추는 춤이라 주위 시선도 신경 쓰였고요.” 하지만 늦게라도 탱고를 배운 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 “이전엔 혼자 하는 취미만 가졌는데 즐겁지 않았죠. 탱고는 달라요. 서로 호흡을 맞춰야 하고, 약속된 춤이 아닌 즉흥 춤이라 더 집중하게 돼요. 나도 모르게 탱고 음악에 빠질 땐 아드레날린이 불끈 올라오는 느낌이랄까.” 늘 앉아서 근무하는 터라 디스크가 심했는데 탱고 이후 몸도 개운해졌다고.
50대 개인사업가 제임스(남)씨는 40대 후반이던 4년 전 탱고를 시작했다. 정말 좋아서 하는 취미를 찾고 싶었던 그는 영화 속 탱고 장면에 반해 강습소를 찾았다. “처음엔 힘들었어요. 무엇보다 여자와 함께 춤을 춘다는 게 어색했고 조심스러웠어요.” 하지만 금세 탱고를 빠졌다. 탱고를 통해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을 느꼈다는 것이 그의 소감이다. “베소(가볍게 포옹하는 스페인식 인사)를 할 땐 인간 대 인간으로 교감하는 기분이 들어요. 그런 고마운 분과 탱고를 추면 좋은 에너지를 받죠. 마치 가족에게 위로 받는 느낌이랄까.”
50대 후반 쟈넷(여)씨는 지난해 9월 딸과 함께 탱고 수업을 들었다. 늦은 나이에 춤을 배우는 게 부끄러웠지만 미국에 살고 있는 딸이 결혼했을 때 사위와 탱고를 추면 멋질 것 같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고. “아름다운 3분의 세계라고 하죠. 음악이 흐르는 짧은 시간 동안 상대방과 탱고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이죠. 사람마다 탱고 스타일이 다 다른데 한 곡 출 때마다 인생을 배우는 느낌이에요.” 평생 취미로 삼기에도 탱고는 제격이라고 한다. “우연히 탱고 파티에 갔는데 70대 할아버지가 춤을 신청했어요. 나이가 많은데 괜찮을까 했는데 매너 있게 배려해 주셔서 너무 유쾌하고 즐거웠어요. 저도 그분처럼 오래, 멋지게 탱고를 즐기고 싶어요.”
해외서 밀롱가 즐겨볼까
탱고는 가장 완벽한 몸의 언어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탱고 앞에서 나이, 국경의 장벽은 무의미하다. 직장인 루나(35ㆍ여)씨도 이런 탱고의 매력에 푹 빠졌다. “초급일 때 유럽 여행에서 무작정 밀롱가(사람들이 모여 탱고를 추는 장소)를 찾았어요. 여행지가 프랑스라 말은 안 통했지만 탱고를 추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어요. 저는 탱고 상대에 최대한 맞추는 편인데, 서로 탱고에 집중할 땐 모든 고민을 잊게 되는 몰입의 상태,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듯한 느낌을 받아요.”
치과의사 소리(여ㆍ40)씨는 병원 문을 닫으면 곧장 탱고 강습장을 찾는다. 바쁘게 살아온 스스로에게 탱고를 선물하고 싶어서였다. 탱고를 배우면서 목표가 생겼다. 바로 유럽의 밀롱가에 가보는 것이다. “유럽을 여행할 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는 장면이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유럽 밀롱가에서 멋지게 탱고 한 곡 추는 게 제 버킷리스트 중 하나예요.” 산티아고(35ㆍ남)씨도 탱고 본고장인 아르헨티나로 여행을 떠나 부인과 멋진 탱고를 춤추는 날을 기대하며 4개월째 부부동반으로 스튜디오를 찾고 있다. “집에서도 탱고를 연습하는데 서로 같은 목표, 같은 취미를 가지니까 부부관계도 훨씬 돈독해졌어요.”
인디밴드 기타리스트인 에디(41)씨는 3년 전 길거리에 붙은 전단을 보고 무작정 탱고를 시작했다고 한다. 힘든 시기 탱고는 그를 일으키는 힘이 돼줬다고. 탱고의 가장 큰 매력으로 그는 ‘파트너십’을 꼽았다. “탱고는 섬세한 예술이에요. 탱고를 출 때 파트너의 컨디션이 어떤지 대번에 알 수 있죠. 춤으로 소통하며 상대방에게 좋은 기운을 받는 기분이에요.”
긍정 에너지ㆍ강한 체력은 덤
탱고는 배려를 일깨우는 춤이기도 하다. 탱고 추는 남자를 땅게로(tangero), 탱고 추는 여자를 땅게라(tangera)라고 하는데, 땅게로가 리드하면 땅게라가 따른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스텝은 이내 꼬인다. 김 원장은 “탱고를 배우면 자연스럽게 타인에 대한 존중, 배려심이 생긴다”고 말했다. 춤에 필수적인 바른 자세를 유지하려 애쓰다 보면 체력도 좋아진다.
모든 취미가 그러하듯 재미를 붙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탱고 역시 꾸준함은 필수. 로레나 앙헬탱고 강사는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개 한두 달이면 탱고 노래에 맞춰 즉흥 춤을 추면서 탱고의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다”며 “수업에 자주 나오지 못할 땐 탱고 동작을 연습하는 ‘쁘락티카(연습)’ 시간을 활용하거나 밀롱가에 다녀오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