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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파인더] 이건희 차명계좌, 과징금 부과해도 200억대 불과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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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파인더] 이건희 차명계좌, 과징금 부과해도 200억대 불과할 듯

입력
2018.02.14 03:0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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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기관의 과징금 산정기준인

금융실명법 시행 당시 잔액

이미 25년 지나 정보 안 남아

부과 가능한 계좌는 27개

1229개 계좌잔액도 2조1600억

특검 밝힌 4조5000억과 차이

2조원대 과징금 사실상 불가능

이건희(가운데) 삼성전자 회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건희(가운데) 삼성전자 회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금융당국이 2008년 특검에서 드러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명계좌 1,229개 중 1993년 8월 금융실명제 시행 이전에 만들어진 27개 계좌에 과징금을 물리는 절차에 착수했다. 일관되게 과징금을 물릴 수 없다고 버티던 당국이 과징금 대상이라는 법제처의 유권해석에 따라 뒤늦게 과징금 부과 절차에 들어가긴 했지만, 실제 과징금을 물리기란 상당히 어려워 보인다. 25년 전 만들어진 계좌정보를 알아야 과징금을 산정할 수 있는데 이미 관련 정보가 모두 폐기됐기 때문이다. 설령 과징금을 물린다 해도 금액은 최대 200억원 안팎에 그칠 걸로 보인다.

금융위원회는 전날 법제처 유권해석에 따른 후속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국세청·금융감독원과 공동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첫 회의를 열었다고 13일 밝혔다. 앞서 법제처는 실명제 시행(93년 8월12일) 전 만들어진 차명(다른 사람 이름 빌려 만든 계좌)·가명(주민등록번호와 계좌주인 이름이 다른 경우)계좌의 경우 정부가 정한 실명전환의무기간(93년 8월~10월)에 실명(이름과 주민번호 일치) 전환했어도 돈 주인이 명확히 드러난 경우 과징금 부과 대상이라고 밝혔다.

법제처의 유권해석은 그간 당국이 유지한 제도 지침과는 크게 어긋난다. 93년 8월 정부가 긴급명령을 발동해 실시한 금융실명제는 계좌를 틀 때 반드시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이 일치하는 실명으로만 하도록 한 게 골자다. 기업 총수들이 비자금을 관리할 목적에 허명(없는 이름), 가명 등으로 계좌를 만들지 못하도록 하려는 취지다. 따라서 실명제 이후 돈 주인과 계좌주인이 다른 차명계좌라 해도 애초 실명으로 계좌를 텄다면 법을 어긴 게 아니란 얘기다.

당국도 이를 감안해 실명제 이전에 만들어진 이 회장의 차명·가명계좌 27개는 실명전환기간에 비록 돈주인인 이 회장 명의로 전환한 건 아니지만 타인의 신분증 확인을 거친 계좌여서 과징금을 물릴 수 없다고 봤다. 하지만 법제처는 누군가의 실명(차명)으로 전환했어도 추후 검찰 수사 등으로 돈주인이 명백히 드러났을 땐 이 회장 본인 이름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것이다. 이는 차명계좌에 차등과세(이자소득의 90% 추징)를 물리는 기준을 그대로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일반적인 차명계좌에 대해선 차등과세 하지 않지만 수사기관에 의해 확인된 차명계좌는 차등과세를 한다. 불로소득을 추징한단 취지다.

법제처의 유권해석으로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에 과징금을 물릴 수 있게 됐지만 현실적으로 물리는 게 쉽지 않다. 현재 특검과 금융감독원의 추가 조사로 드러난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는 총 1,229개다. 이 중 실명제 이후 만들어진 차명계좌 1,202개엔 과징금을 물릴 수 없다. 현재 금융실명법은 과징금 대상(금융자산의 50%)을 금융실명제 이전에 발생한 차명계좌 중 정부가 정한 기간에 실명으로 전환하지 않은 차명계좌로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실명법 부칙 6조에 나온 과징금 부과 기준을 보면 과징금을 징수하는 주체는 금융기관이며, 과징금 산정 기준은 금융실명법이 시행된 93년 8월12일 현재 통장에 찍힌 잔액이다. 하지만 이미 25년 전이라 금융사들은 당시의 계좌잔액 정보를 전혀 갖고 있지 않다. 과징금을 산정할 기준 자체가 없는 것이다. 금감원이 최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2007년 12월말 기준 이 회장 차명계좌 1,229개 계좌잔액은 2조1,600억원이다. 특검이 밝힌 4조5,000억원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 역시 최초 계좌잔액이 아니라 93년 이후 입출금이 반복돼 2007년 12월말 시점에 계좌에 들어 있는 액수라 이를 기준으로 과징금을 매기기 어렵다. 다만 2조1,600억원을 기준으로 전체 차명계좌수를 나눠 단순 계산하면 계좌당 17억5,000만원씩 들어있고 27개 차명계좌에 물릴 수 있는 최대 과징금은 236억원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현재로선 93년 8월12일 당시 계좌에 들어있었던 돈을 정확히 알 방법이 없어 과징금을 부과할 의무는 생겼는데 매길 방법이 없는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당국이 법적으로 이건희 차명계좌에 과징금을 물릴 수 있는 기간은 조준웅 삼성 특검의 수사 결과 발표일(2008년4월17일)로부터 딱 10년(부과제척기간)인 오는 4월17일까지다. 때문에 두 달 남짓 동안 정부가 앞서 자문기구인 혁신위원회가 권고한 대로 법을 고쳐 실명제 이후 차명계좌 1,202개에 대해 과징금 부과 기준을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다. 사실상 27개 차명계좌에만 과징금을 물리는 선에서 과징금 논란이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 이를 감안하면 일부 언론이 언급한 대로 특검에서 드러난 차명계좌 잔액 4조5,000억원에 단순 50%를 매겨 최대 2조원의 과징금을 물릴 수 있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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