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MB)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대북공작금을 받아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뒷조사한 의혹을 받는 이현동(62) 전 국세청장이 13일 구속 수감됐다. 역대 국세청장 22명 중 비리 등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거나 구속된 사람은 이 전 청장 포함 9명으로 ‘국세청장 잔혹사’가 되풀이됐다.
강부영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는 전날 이 전 청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심사)을 진행한 뒤 “주요 범죄혐의가 소명되고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2010~2013년 국세청장을 지낸 이 전 청장은 국세청 차장이던 2010년쯤 국정원 비밀 프로젝트인 ‘데이비슨’과 관련해 국세청 세무 관련 자료를 국정원에 넘겨주고 대북공작금 수천 만원을 뒷돈으로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ㆍ뇌물수수 등)를 받고 있다. ‘데이비슨’은 MB 정부 시절 국정원이 DJ 뒷조사 및 음해공작을 위해 해외 풍문을 수집하고 확인한 프로젝트다. 앞서 지난달 31일 검찰은 대북공작금 10억여원을 빼돌려 DJ 및 노무현 전 대통령 음해공작을 펼친 혐의로 MB 국정원 최종흡 전 3차장과 김모 전 대북공작국장을 구속했다.
이 전 청장이 구속되며 전ㆍ현직 국세청장이 각종 비리 혐의로 사법 처리되는 불명예 전통을 이어가게 됐다. 1966년 국세청이 만들어진 이래 역대 국세청장 22명 중 검찰 수사를 받거나 구속된 사람은 9명이며, 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사람은 6명이다. 세무조사 등 막강한 권한을 가져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과 함께 ‘4대 권력기관’으로 꼽히는 국세청 수장들이 돈과 권력의 유혹에 쉽게 빠져든 셈이다.
앞서 5대 안무혁 전 청장과 6대 성용욱 전 청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을 위해 120억원 상당 불법 대선자금을 받은 혐의로 각각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았다. 10대 임채주 전 청장은 97년 대선에서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를 위해 대선자금을 불법 모금한 ‘세풍사건’에 연루돼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다. 12대 안정남 전 청장은 부동산 투기, 증여세 포탈 의혹이 제기돼 건설교통부 장관 취임 20여일 만에 물러났고, 13대 손영래 전 청장은 썬앤문그룹 세무조사 무마 대가로 뇌물을 받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다.
국세청 비리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노무현 정부, MB 정부 시절에는 국세청장 6명 중 4명이 사법 처리를 받았다. 15대 이주성 전 청장은 프라임그룹 세무조사 무마 대가로 20억원 상당 아파트를 받아 징역 2년6개월을, 16대 전군표 전 청장은 CJ그룹으로부터 세무조사 관련 뇌물을 받아 징역 3년6개월을 선고 받았다. 17대 한상률 전 청장은 고액 그림으로 인사 청탁한 혐의, 세무조사 관련 고액 자문료 수수 혐의 등으로 기소됐지만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현동 전 청장은 구속돼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두 정권에서 그나마 논란이 없던 인물은 14대 이용섭 전 청장과 18대 백용호 전 청장 두 명인데, 국세청 외부에서 수혈된 인사라는 공통점이 있다. 즉, 해당 시기 내부 승진으로 국세청장에 오른 인사는 예외 없이 사법 처리됐다는 얘기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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