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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스펙 교육과 코리아 디스카운트

입력
2018.02.13 13:58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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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올드보이’에는 영문도 모른 채 15년을 갇혀 산 한 남자가 나온다. 그는 남은 인생을 복수의 화신이 되어 지난 세월을 보상하려는 듯 살아간다. 여기 10년이 넘는 시간을 잃어버린 또 한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는 복수는커녕 자신이 뭘 잃어버렸는지, 왜 잃어버렸는지도 모른 채 태연한 듯 살아간다. 바로 우리나라 대부분 청년들이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청년들은 학창시절 6년과 대학시절 4년을 입시와 스펙 전쟁으로 허비하며 잃어버린 10년을 겪었다. 더군다나 재수 1~2년, 휴학 1~2년에 군대 2년까지 더하면 장장 15년이 훌쩍 넘어간다.

이러한 현상을 해외에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라고 부른다. 글로벌 노동력 수준을 볼 때에 한국 청년들이 불리한 위치에서 시작함을 의미한다. 실제로 미국이나 유럽 청년들은 어릴 때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탐색하도록 교육을 받고 그 결과 스물 한두 살만 되면 바로 일을 시작한다. 그렇게 10년 간 취업과 퇴사, 이직과 창업 등 다양한 일을 경험하며 자신의 길을 찾아가다 보면 어느새 서른이 되었을 때 업계에서 인정받는 전문가가 되어 있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어떨까? 한국에서 서른 살이면 이제 막 입사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신입 사원이거나, 아직 취업 준비생인 경우도 많다. 자신의 커리어 전문성은커녕, 아직도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취업할지조차 알 수 없이 방황하는 것이다. 한국이 유럽인보다 노력을 덜 했거나 부족해서 그런 걸까? 절대 아니다. 꽃다운 청춘 시절을 오로지 주입식 교육과 취업을 위해서만 보내는데 과연 이런 상황에서 순수하게 자신만의 길을 탐색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즉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우리의 자질 부족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뿌리 깊은 스펙 중심의 주입식 교육 시스템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스펙 사회의 프레임에서 우리는 개인의 가치관이나 자아탐구, 실력보다는 사회에서 겉으로 인정받는 안전장치에만 집중하게 된다. 요즘 직장인들을 만나 “내가 만약 대학생으로 돌아간다면 가장 하고 싶은 것은?”을 물었을 때 첫 번째로 ‘라이선스’를 따는 것을 꼽는다. 변호사 한의사와 같은 전문직 자격증과 같은 것들 말이다. 스무 살 청춘으로 돌아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이 ‘자아’를 찾는 것이 아니라 ‘자격증’을 더 빨리 확보하는 것이라니. 그것이 가장 확실하게 나를 지켜주는 안전장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 스펙 사회의 프레임이 너무 견고한 나머지 우리는 스펙 자체를 벗어나려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너무나 불안정하고 막막해 보이니까.

결국 스펙 사회의 프레임을 벗어나 비교하지 않고 나 자신만의 가치를 찾아가는 재학습이 필요하다. 이미 졸업 후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들에게 ‘우리나라 교육 제도가 무슨 소용이람?’ 하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교육 시스템에서 20~30대 직장인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청소년과 대학 시절 아무리 자율전공이니 진로탐색이니 강조해도 결국 졸업 후 모두가 스펙에 맞춰 취업을 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즉 청소년에게는 롤모델이 되고 시니어 세대에게는 희망이 되어 줄 수 있는 청년 직장인들의 변화와 재학습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 역시 사회적 지원 및 국가적 안전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모두가 공무원이 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보다 다양한 직업과 진로를 탐색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스타트업, 강소기업, 1인기업, 다양한 창직 모델들을 개발하고 연구해야 한다. 그러한 혁신적 유형의 일자리를 발굴할 수 있도록 대대적 지원이 필요하며, 교육 역시 그러한 장기적 토대 하에 개혁되어야 한다.

장수한 퇴사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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