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 이후 타인 명의로 전환
자금 출연자 따로 있으면 부과”
유권해석 통해 금융위 입장 뒤집어
혁신위 등 “입법 통해 근거 마련”
1001개 계좌도 과징금 여부 주목
법제처가 이건희 삼성 회장의 문제가 된 차명계좌 1,021개 중 금융실명제 시행(1993년) 이전 개설됐다 실명제 이후 타인(삼성 임원) 명의로 ‘실명’ 전환된 20개에 대해 ‘과징금 징수 대상’이란 유권해석을 내렸다. 이는 그 동안 현행법상 과징금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어 온 금융위원회의 입장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실명제 이후 개설된 나머지 차명계좌 1,001개에 대해서도 과징금이 부과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12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법제처는 금융실명제 이전 만들어진 차명계좌와 관련, 실명제 시행 이후 타인 명의로 실명 전환됐더라도 금융실명법이 시행된 97년 12월31일 이후 차명계좌의 자금 출연자가 따로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경우엔 과징금 징수 대상이라고 밝혔다. 이는 금융실명제 시행 이후 타인 명의로 실명 전환된 이 회장의 20개 차명계좌가 과징금 부과 대상인지 판단해 달라는 금융위의 법령해석 요청에 따른 법제처의 답이다.
금융거래 때 실지명의(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의 이름)로 거래하도록 한 금융실명제는 93년8월12일 시행됐다. 당시 정부는 금융실명제 시행 이전 가명 등 비실명으로 은행 계좌를 튼 경우 두 달 가량 기간을 줘 실명으로 전환하도록 했다. 은행에 가 신분증을 제시해 확인을 거치면 은행이 실명으로 된 계좌를 다시 발급해주는 식이었다. 만약 이를 이행하지 않을 땐 해당 자산의 60%(현재는 50%)를 과징금으로 물리기로 했다. 다만 현행 금융실명법은 금융실명제 시행 전 존재하던 비실명 계좌를 정부가 정한 기간 안에 실명으로 전환하지 않은 경우에 대해서만 과징금을 규정하고 있다. 그 이후에 만들어진 차명계좌에 대해서는 과징금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이 회장의 차명계좌는 모두 4조5,000억원 규모다. 문제가 된 차명계좌 1,021개 중 20개는 실명제 시행 이전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1,001개는 실명제 시행 이후 개설된 것이다. 현행법상 차명계좌 1,001개에 대해서는 과징금 부과 규정이 없어 징수가 어렵다. 이번에 법제처가 과징금 대상이라고 해석한 건 실명제 시행 이전에 만들어진 20개의 차명계좌다. 금융위는 이 20개의 차명계좌에 대해서도, 비록 돈의 주인인 이 회장 명의로 전환된 건 아니지만 타인의 신분증 확인을 거친 계좌인 만큼 과징금을 물릴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많은 이들이 차명계좌 자체가 불법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달리 현 금융실명제는 사실상 차명계좌를 허용하고 있다. 법에 ‘실명으로만 거래해야 한다’고 돼 있어 실존 인물의 이름으로 계좌를 트는 한 설사 돈주인과 계좌 명의가 달라도 이를 효력을 가진 계좌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실명제 시행 이전에 만들어졌다 이후 타인 명의로 실명 전환된 계좌는 과징금을 부과할 수 없다는 게 그 동안의 금융위 입장이었다. 법제처의 이번 유권해석은 이를 뒤집은 것이다.
법제처의 해석으로 이 회장의 차명계좌 20개에 대한 과징금 부과 작업엔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법적으로 과징금을 물릴 수 있는 기간(부과제적기간 10년)이 이 회장의 차명계좌를 확인한 조준웅 삼성 특검의 수사 결과 발표일(2008년4월17일)로부터 계산하면 오는 4월17일 만료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이 회장의 차명계좌에 과징금을 물려야 한다고 문제 제기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금까지 금융위는 이 회장 차명계좌에 금융실명법을 제대로 적용하지 않고 과징금 부과도 하지 않았다”며 “이는 명백한 삼성 감싸기”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김용범 부위원장 주재로 국세청, 금융감독원과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대응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앞서 금융위 자문기구인 혁신위는 일단 20개 계좌에 과징금을 부과하고 나머지 1,001개에 대해서도 입법을 통해 과징금 부과 근거를 만들어 똑같이 과징금을 물려야 한다고 금융위에 권고했다. 이에 대해서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같은 입장이다. 이에 따라 이 회장 차명계좌 1,001개에 대해서도 과징금이 부과될 지 주목된다.
다만 실제 과징금 부과가 어려울 거란 분석도 나온다. 93년 8월 이전의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는 이미 25년이 훌쩍 넘어 금융사들이 계좌잔액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아 과징금 물릴 기준이 분명치 않아서다. 금융위 관계자는 “과징금 부과는 국세청 담당이라 금융위가 어떻게 할 순 없다”며 “국세청 등과 구체적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wd1280@hankooki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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