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정재호]
스벤 크라머르/사진=연합뉴스.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장의 한 바퀴는 400m다. 1만m 장거리 선수들은 트랙을 무려 25바퀴를 돌아야 한다. 5,000m는 12.5바퀴다. 2명의 선수가 한 바퀴를 돌 때마다 정해진 교차 구역에서 아웃코스 출발 선수는 인코스로, 인코스에서 출발한 선수는 아웃코스로 서로 활주로를 바꾼다.
이런 약간의 변수가 존재하지만 한 바퀴를 도는 랩 타임은 20초대 초중반에서 뒤로 갈수록 높아져 자연스럽게 30초대로 들어서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20초대를 넘지 않는 괴물이 있다. 빙속 황제로 불리는 스벤 크라머르(32ㆍ네덜란드)다. 2014 소치 동계 올림픽 5,000m에서 초반부터 강력한 스퍼트를 펼쳐 경기 막판까지 20초대 후반을 넘지 않는 크라머르의 스테미너는 괴물을 넘어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넘볼 수 없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을 줄임말)’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당시 6분 10초 762로 2위보다 약 5초가 빠른 크라머르의 질주에 선수들조차 혀를 내둘렀다. 그는 5,000m 올림픽 3연패(6분 09초 76)를 달성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도 변함없는 괴물의 위용을 과시했다.
크라머르는 빙상 유전자(DNA)를 물려받았다. 아버지 에프 크라머르는 1980년과 1984년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였고 4살 위인 형 브레히트 크라머르도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다.
크라머르는 어린 시절부터 빙상 강국 네덜란드에서도 남다른 실력을 과시했다. 2004년 12월 18살의 나이로 네덜란드 선수권에서 우승하고 생애 처음으로 나간 국제빙상연맹(ISU) 스피드 스케이팅 유럽 선수권에서 은메달을 땄다. 내친 김에 세계 선수권에서도 3위에 오르는 등 재능을 발휘했다.
이후 크라머르는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5,000m 은메달을 시작으로 12년 동안 장거리 부문의 독보적인 황제로 군림해오고 있다. 5,000m 종목의 모든 기록은 크라머르가 보유하고 있다고 할 만큼 압도적이다. 2007년 3월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월드컵 남자 1만m에서는 12분 41초 69를 기록했고 같은 해 11월 캐나다 캘거리에서 벌어진 월드컵 남자 5,000m에서는 6분 03초 32의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지난해 말 월드컵 4차 대회를 통해 테드얀 블루먼(캐나다ㆍ6분 01초 86)에 의해 10년 만에 깨졌지만 이미 크라머르는 소치 올림픽 전까지 5,000m와 1만m에서 각각 3회씩 신기록을 수립했다. 2006년 토리노 때부터 3번의 올림픽 동안 금메달 3개ㆍ은메달 2개ㆍ동메달 2개를 목에 걸었다. 크라머르는 2010-2011시즌 다리 신경 장애로 잠시 빙판을 떠났지만 2011-2012시즌 곧바로 부활했다.
평소 크라머르는 다혈질이고 카리스마가 넘친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당시 레인을 잘못 타는 바람에 이승훈에게 남자 1만m 금메달을 내주자 화가 난 나머지 고글을 집어 던지던 모습이 그의 성격을 대변해준다.
거만하게 느껴질 만큼 넘치는 자신감과 승부욕이 지금의 그를 있게 만들었다. “이기기 위해 평범한 스케이팅을 거부한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자신감이 자칫 자만으로 흐르지 않게 옆에서 붙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은 2007년부터 교제해온 여자 친구다. 네덜란드 하키 대표팀의 나오미 반 아스는 크라머르의 롱런에 큰 힘을 불어넣어주는 조력자로 알려졌다.
강릉=정재호 기자 kemp@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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