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말은 좋은데, 스토리가 없네요.”
11일 오전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슬로프 스타일 결승전. KBS 중계석에 앉은 배우 출신 박재민 해설위원의 입담이 터졌다. 연속해서 점프를 실패하고 마지막 점프대에서 턴을 성공한 한 선수에게 날카로우면서도 재치 넘치는 평가를 했다. 그는 중계 내내 선수들의 활약을 드라마에 빗댔다. 괜찮은 경기를 펼친 선수에게는 “프롤로그에서 에필로그까지 괜찮았다”는 칭찬이, 아쉬운 경기력을 보인 선수에게는 “웰메이드 드라마의 피니시가 좋지 않았다”는 쓴소리가 이어졌다.
박재민은 차분한 진행을 바탕으로 재치 있는 입담을 곁들이며 눈길을 끌어 경기 도중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그는 12일 한국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중계는 정보 전달뿐 아니라 메시지를 줘야 하는데 처음엔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하지만 “전문 지식보다는 스노보드를 모르는 시청자들이 종목에 흥미를 갖고 경기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방송사가 맥락 없이 한 출연 섭외는 아니다. 서울대에서 체육교육학과 경영학을 전공한 박재민은 오래 전부터 스포츠에 능통한 배우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매년 전국동계체육대회에 출전하는, 현역 서울시 대표 스노보드 선수다. 2010년 국제스키연맹(FIS) 스노보드, 알파인스키 국제심판 자격증도 취득했다. SBS 드라마 ‘내 사위의 여자’, KBS2 ‘왕의 얼굴’, ‘공주의 남자’ 등에 출연한 그는 KBS2 예능프로그램 ‘출발 드림팀 시즌2’(2011~2016)에서 남다른 운동신경을 과시했다.
이번 해설위원 활동은 KBS 스포츠중계부의 정재윤 PD가 대학 후배인 박재민을 추천하면서 성사됐다. 지난해 박재민이 스포츠채널 KBSN에서 KBS 아시안게임 예선전 해설을 맡은 경험이 섭외 발판이 됐다. 정 PD는 “박재민이 평소 체육인이라는 자부심과 지식이 있어 전문성에 대한 의심은 안 했고, 방송 생활을 오래해 해설위원으로 적합할 것이라 판단했다”며 “낯선 용어나 어려운 상황을 쉽게 설명해주며 시청자와 호흡하는 진행력이 돋보인다”고 말했다.
통상 스노보드 선수가 몇 바퀴를 돌았는지 알려주고 끝나는 중계와 달리, 박재민은 턴을 세는 방법과 선수들이 넘어지는 방법, 스노보드 경기를 즐기는 요령에 대해 설명하고 시청자와 함께 즐긴다는 것이다. 그는 PD, 캐스터와의 사전 준비 단계에서 선수 개개인의 정보와 동향, 새로 나온 기술 등 전문 지식을 익혔고, 여러 차례 중계 연습을 반복하며 방송을 준비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재민은 남은 스노보드의 전 종목을 중계한다. 그는 “영어로 된 기술 명칭을 정확하게 알려주기 보다는, 이를 한국어로 풀어서 이해를 쉽게 해보자는 게 이번 해설의 목표”라고 말했다. “시청자의 마음 속 물음표들이 단 하나라도 느낌표로 바뀔 수 있도록 남은 경기 중계에 성실히 임하겠습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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