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스 “북한이 원한다면 대화할 것”
‘압박과 관여’ 투트랙 전략 본격화
트럼프, 평창서 펜스ㆍ김영남 등
카메라 없는 비공식 접촉은 허용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최대 압박과 관여’라는 말을 다시 꺼냈다. 트럼프 정부 초기 대북 정책의 슬로건이었으나 미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망 사건과 북한의 잇단 도발 후 ‘관여’는 슬그머니 사라지고 ‘최대 압박’만 남았던 터였다. 이는 압박 강화와 동시에 대북 대화에도 적극 나서는 투 트랙 전략을 본격화하겠다는 신호로 풀이된다. 다만 북한 비핵화의 목표는 흔들림 없어, 한반도 정세 변화의 공은 다시 북한으로 넘어간 모습이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10일 한국 방문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오는 공군 2호기 안에서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조시 로긴과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평창 이후) 추가적인 대북 관여를 위한 조건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또 “그들(김정은 정권)이 비핵화를 향한 의미 있는 조치를 할 때까지 최대 압박은 계속되고 강화된다”면서도 “(북한이) 대화를 원한다면 우리는 대화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의미 있는 비핵화 조치를 취해야만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고 했던 데서 초기 대화의 문호를 넓힌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백악관이 ‘전제 조건’ 없는 초기 대화를 승인한 것은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펜스 부통령이 대화와 관여라는 말을 다시 꺼낸 것은 뜻밖 변화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나 펜스 부통령 방한 시 공개 접촉은 금지했으나 카메라가 없는 상태에서의 비공개 접촉은 허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 위협’, ‘인권 문제’, ‘대화’ 등 쓸 수 있는 카드는 모두 활용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펜스 부통령은 특히 ‘북한이 제재를 경감 받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나도 모르겠다. 그게 대화를 해야 하는 이유다”고 말해 비핵화 의지만 보인다면 구체적인 협상 과정에서 대북 타협 가능성도 시사했다.
그렇다고 미국이 대북 강경 입장을 누그러뜨린다는 의미는 아니다. 펜스 부통령은 방한 기간 추가 제재 의지를 밝히고 북한 인권 문제도 수 차례 제기했다. 또 “문 대통령이 자신에게 비핵화 조치를 취하기 전까지 대북 압박정책을 풀지 않겠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날 워싱턴 주변에서 북한에 대한 해상봉쇄 조치 가능성이 흘러나오는 것도 이런 상황을 반영한다. 이집트를 방문 중인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역시 12일 카이로에서 “평창 동계올림픽을 매개로 한 남북 교섭을 진정한 정치적 절차의 서곡으로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며 “북한이 미국과 진지한 대화를 할 준비가 돼 있다고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북한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관건은 역시 북한의 태도다. ‘비핵화 조치 전까지 당근은 없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받고도, 실익 없이 북미대화에 나설지 미지수다. 그래서 한미 연합훈련이 재개되면 남북대화의 판까지 깨고 나설 가능성도 있다. 물론 문 대통령이 미국으로부터 남북대화 지지를 끌어낸 호기를 이용, 탐색적으로라도 북미대화를 시도할 수도 있다. 미국 국무부는 ‘미국의소리’(VOA)의 논평 요청과 관련, “비핵화 논의를 전제로 한 남북관계 개선 및 문 대통령의 북미대화 촉구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로긴 칼럼니스트는 “펜스 부통령 방한기간 북미간 전제조건 없는 직접 대화로 이어질 수 있는 외교적 출구를 향한 실질적 진전이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