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의 군인 정치인 무함마드 지아 울 하크(1924~1988)는 1977년 무혈 쿠데타로 집권하자마자 국가 통치 시스템의 이슬람화에 진력했다. 먼저 세속 법률을 쿠란(Quran)과 순나(Sunnah)에 동조시켰다. 그건 파키스탄 헌법 정신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했다. 파키스탄 헌법은 이슬람교가 국교(2조)이며 쿠란과 순나에 반하는 어떠한 법률도 제정할 수 없다(227조)고 명시하고 있다.
2년 뒤인 79년, 간통 등 혼외 성관계와 음주 절도 등 경범죄 처벌법 후두드(Hudood)법이 제정됐다. 후두드법은 강간당한 여성이 법정에서 피해사실을 입증하려면 전과 없는 무슬림 남성 증인 4명을 확보해야 하며, 그러지 못할 경우 오히려 간통죄로 처벌받도록 규정했다. 간통죄 형벌은 태형(채찍질)과 사형(돌로 살해) 등이었다.
강간 피해사실을 공개하는 것만으로도 가족에 의한 명예살인 등에 목숨을 걸어야 가능한 일이었지만, 범죄 사실을 입증하는 것도 그만큼 어려웠다. 여성 증인의 증언 능력이 문제가 되자 군사정부는 83년 이른바 ‘증거법 Law of Evidence’을 제정했다. 여성 증인의 효력은 남성 증인의 절반만 인정한다는 게 골자. 다시 말해 피해 여성이 강간 사실을 입증하려면 여성 증인 8명을 확보해야 했다. 파키스탄 헌법에는 모든 시민은 평등하게 법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으며, 성별에 따른 차별을 불허한다(25조)는 구절도 있다.
펀잡여성변호사협회(Punjab Women Lawyer’s Association) 회원 등 200여 명이 1983년 2월 12일, 주도 라호르(Lahore) 중심가 리걸 초크(Regal Chowk)에 모여 라호르 고등법원까지 행진을 시작했다. 그들의 행진은 증거법이 헌법 평등 조항에 위배된다는 사실을 밝힌 청원서를 전달한다는 명분이었지만, 군사정부는 그 행위를 계엄법이 금지한 대중 집회및 시위라 판단했다. 경찰은 곤봉과 최루탄으로 행진을 진압하고 참가자들을 구타ㆍ연행해 전원 수감했다.
파키스탄 여성들은 세계 여성의 날(3.8)과 별도로, 오늘(2.12)을 파키스탄 페미니즘 운동의 첫 날이자 파키스탄 여성의 날로 기념한다. 후두드법은 2006년 ‘여성보호법’으로 개정됐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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