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천재’평 불구 잦은 부상
2년전 허리 골절땐 “선수생활 끝”
평창만 생각하며 악착같이 부활
‘올림픽 신기록’ 압도적 기량 우승
“축하 메시지 700개, 답장 할 것
5000m 계주 꼭 우승하고 싶어”
평창 밤하늘에 처음으로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지난 10일 남자 쇼트트랙 1,500m에서 한국에 평창동계올림픽 첫 금메달을 안기며 꿈 같은 하루를 보낸 임효준(22ㆍ한국체대)은 11일 평창 올림픽 메달플라자에서 열린 메달 시상식에서 시상대 맨 꼭대기에 섰다. 동메달을 딴 세멘 엘리스트라토프(OAR), 은메달의 싱키 크네흐트(네덜란드)에 이어 마지막으로 호명된 임효준은 메달플라자를 가득 메운 관중들의 환호에 손가락 하트 세리머니로 답하며 시상대에 올랐다. 금메달을 목에 건 뒤에는 꼭 깨물어 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시상대 위에서도 임효준은 어깨를 두드리기도 하고,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기도 하는 등 다양한 세리머니로 기쁨을 만끽했다. 이어 태극기가 게양되고 애국가가 흐르자 임효준은 조용히 따라 불렀다. 메달 시상식 후 임효준은 "꿈에 그리던 순간이다. 아직 금메달을 획득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라며 "아직 경기가 많이 남아있다. 이 흐름을 끝까지 가져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평창올림픽 대표팀으로 뽑히기 전까지 받은 메달 중 가장 큰 메달이 2012년 유스올림픽에서 받은 금메달이었다"라며 "이렇게 큰 메달을 받은 건 처음"이라며 미소 지었다. 임효준은 이날 시상식에 참석하기 앞서 강릉 영동쇼트트랙 경기장에서 가진 훈련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의 사인 공세를 받으며 하루 아침에 치솟은 인기를 실감했다.
위풍당당한 올림픽 금메달의 주인공이 되기까지 임효준의 인생은 오뚝이와 같았다. 골절만 3번을 포함해 수술대에 오른 것이 무려 7번. 특히 2년 전 허리 골절 수술 뒤에는 선수 생활을 연장하기가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평창’이라는 두 글자만 각인돼 있는 그는 정신력으로 부서진 신체를 지배했다. 그리고 불운의 대명사에서 인간 승리의 아이콘으로 우뚝 섰다. 임효준은 전날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에서 2분10초485의 기록으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해 세계 기록 보유자인 크네흐트(2분10초555)를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정수 한국일보 해설위원의 올림픽 기록(2분10초949)을 0.464초 앞당긴 신기록이다. 임효준은 준결승에선 중국 선수만 3명이 포함된 8명, 결선에선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포함된 9명이 경쟁했지만 독보적인 기량 앞에 적수는 없었다. 4년 전 유럽선수권대회에서 자신을 앞질러 역전 우승을 차지한 안현수에게 손가락 욕설을 해 메달을 박탈당했던 크네흐트도 이번엔 임효준의 어깨를 두드리며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했다. 함께 결선에 나선 황대헌(19ㆍ부흥고)은 아쉽게 넘어지면서 메달 획득에 실패했고, 서이라(26ㆍ화성시청)는 준결승에서 고배를 들었다.
임효준은 초등학교 4학년 때 6학년생들을 제치고 종별선수권에서 우승했을 정도로 쇼트트랙 천재로 통했다. 그러나 이후 중학교 1학년 때 정강이 뼈 골절로 1년 반을 쉬었고,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오른 발목이 부러져 또 수술대에 올랐다. 이후에도 발목 인대 파열상, 허리 압박골절, 그리고 손목 등 성한 곳이 없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은 임효준은 지난해 국제빙상연맹(ISU) 월드컵에서 빛을 보기 시작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도 이정수, 신다운 등 쟁쟁한 선배들을 따돌리고 전체 1위로 올림픽 티켓을 따냈다.
임효준은 13일 남자 1,000m 예선을 시작으로 두 번째 금메달에 도전한다. 예선을 통과하면 17일 결선을 치른다.
한국 쇼트트랙은 역대 동계올림픽에서 22번째 금메달을 수확하며 효자 종목의 명성을 이었다. 아울러 2014년 소치 대회에서 노메달에 그쳤던 남자 쇼트트랙도 임효준과 함께 화려한 부활을 예고했다. 신예들로 구성돼 확실한 에이스가 없다는 우려를 말끔히 씻어낸 기분 좋은 출발이다.
평창=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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