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국방부, 中ㆍ北ㆍ러 “핵위협” 거명
러 측 “美, 핵감축 제안 안 응해”
美ㆍ러 관계 정상화 불투명해져
英ㆍ佛도 덩달아 핵군비 강화 조짐
미국 국무부는 지난 5일 7년 전 발효된 미국과 러시아의 전략무기 감축 협약 ‘뉴 스타트(New START)’에 따른 무기감축 목표를 양국이 모두 달성한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양국의 ‘발사 대기’ 상태 전략핵무기 배치를 줄이는 뉴 스타트는 협상 당시에는 실현 가능성에 대한 회의론이 팽배했지만, 그래도 목표를 달성해 핵전쟁 위험성을 줄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미ㆍ러의 현재 상황은 마냥 축하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양국간 긴장이 고조되면서 핵 경쟁도 오히려 심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10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이자 러시아 국영 방위산업체 로스텍(Rostec)의 세르게이 체메조프 회장은 미국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에서 “현재 정치 구도에서 ‘뉴 스타트’는 (만료 예정인 2021년을 넘어) 연장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뉴 스타트는 발효 10년이 되는 2021년 이전 미ㆍ러 양국이 연장에 합의하지 않으면 효력을 상실한다.
체메조프 회장의 진단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내전 개입 이후 경색된 미ㆍ러 관계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집권으로 정상화될 것이란 기대가 깨졌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2일 미 국방부가 발행한 핵태세검토보고서(NPR)가 중국ㆍ북한과 함께 러시아의 핵 위협을 구체적으로 거명한 것을 문제 삼았다. “우리가 감축을 먼저 제안했음에도 미국이 응할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NPR은 러시아가 뉴 스타트 제한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단거리ㆍ전술 핵무기 저장고를 확대하고 있다는 데 주목하며, 미국도 “저강도 핵무기” 개발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강력한 파괴력 때문에 오히려 사용 가능성은 낮은 기존 전략 핵무기에 비해 배치와 사용이 용이한 제한적 핵전력을 적극 개발함으로써 핵 억지력을 강화하겠다는 이른바 “억지를 위한 전력 고도화” 전략이다. 러시아에선 이미 2000년에 푸틴 대통령이 주도해 비슷한 군사 정책을 도입한 바 있다.
사실 양국의 ‘핵 경쟁’은 트럼프 정부 이전부터 시작됐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정부 때인 2016년 러시아가 신형 순항미사일 노바토르 9M729를 개발해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어겼다고 지적했고, 러시아는 거꾸로 미국의 핵무기 현대화에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는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러시아의 핵 탑재 해저무인기 ‘스테이터스-6’ 개발까지 거론하며 대러 경계심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리고 있다.
미ㆍ러 핵경쟁은 글로벌 군비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영국, 프랑스, 중국 등도 덩달아 핵 군비 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프랑스 국방부는 지난 8일 “향후 7년간 국방 예산을 3,000억유로(약 400조원)로 늘리고 이 가운데 370억유로(50조원)를 핵무기 현대화에 투입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동유럽에서 점증하는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러시아 군사 전문가 알렉산데르 골츠는 워싱턴포스트에 “오바마 정부 당시 미국은 러시아의 군비 증강을 좋게 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심각하게는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트럼프 정부가 러시아의 위협을 아주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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