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링 천국’ 캐나다는 세계 최강다웠다. 기계처럼 정교한 캐나다 케이틀린 로스(30)-존 모리스(40)의 샷에 관중들도 한국 팀을 향한 응원을 잠시 멈추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러나 한국의 장혜지(21)-이기정(23)도 포기하지 않았다. 이미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된 상황에서도 캐나다전에 최선을 다해 관중들에게 큰 박수를 받았다.
한국 믹스더블(혼성 2인조) 컬링의 도전이 끝을 맺었다. 장혜지-이기정은 11일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린 캐나다전에서 3-7로 패하며 최종 전적 2승5패를 기록해 예선 6위를 확정했다. 상위 4팀까지 올라가는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두 선수는 경기 뒤 관중석을 차례로 돌며 인사했고 경기복을 관중들에게 던져주며 감사를 표시했다. 잠시 후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 들어선 장혜지, 이기정의 눈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장혜지는 인터뷰 도중 장반석 믹스더블 대표팀 감독 품에 안겨 흐느끼기도 했다.
이들의 눈물은 탈락의 아쉬움보다 팬들에게 보답하지 못한 미안함의 의미가 더 컸다. 전날인 10일에도 스위스에 진 뒤 눈물을 보였던 이기정은 “너무 영광이다. 살면서 이런 순간이 없었던 것 같다. 즐거운 올림픽이었다. 팬들에게 감사하다는 표현 밖에 할 게 없다”고 말했다. 장혜지도 “외국 선수들이 우리 관중들 매너가 너무 좋다고 칭찬해 뿌듯하다”고 말했다. 컬링은 선수들이 투구할 때 스톤을 손에서 떠나 보내기 직전까지는 침묵하는 게 매너다. 장반석 감독은 “소치올림픽 때 러시아 관중들이 발까지 굴러 참가 선수들이 크게 불만을 나타냈고 중국 대회에서는 중국 선수들이 오히려 자국 관중에게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했다. 반면 우리 관중은 선수들의 플레이를 기다려 주셨다”고 고마워했다.
컬링은 평창올림픽 초반 분위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한 일등 공신이다. 컬링 경기가 열릴 때마다 ‘컬링’ ‘컬링 규칙’ 등이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믹스더블 예선 1∼7차전 내내 경기장은 관중으로 가득 찼다. 이기정이 투구나 스위핑을 할 때 장혜지는 스톤의 코스를 읽으며 “오빠! 라인 좋아요”라고 자주 외쳤는데 이 말은 유행어가 됐다.
믹스더블은 남녀 대표팀에 바톤을 넘긴다. 남녀 컬링은 14일부터 시작한다. 남자 팀에는 이기정보다 2분 빨리 태어난 쌍둥이 형 이기복(23)이 있다. 이기정은 “형은 저보다 강하고 침착하다. 많은 관중 앞에서 부담을 가질까 걱정인데 잘 이겨낼 것”이라며 “어제 형과 통화했는데 제 인기가 높아진 걸 질투하고 있다. 인터뷰 때 자기 이름을 언급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기복’ 선수도 많이 사랑해달라”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장혜지도 “언니들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낼 것”이라며 여자대표팀을 응원했다. 이기정-이기복 말고도 남녀 팀은 여럿이 가족 관계로 엮여있다. 여자대표팀 김영미(27)와 김경애(24)는 자매, 장반석 감독과 김민정(37) 여자 팀 감독은 부부다. 김 감독의 동생 김민찬(31)은 남자 대표다. 컬링은 다른 종목과 달리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한 팀이 그대로 대표팀이 되는 대표적인 ‘패밀리 스포츠’다.
강릉=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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