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새해를 산뜻하게 출발했다.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이끌어냈을 뿐 아니라 이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으로 돌렸다(“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이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는 1월10일 기자회견). 문 대통령은 결국 ‘올림픽 쿠데타’를 통해 올림픽을 위협하던 북한을 관리함과 동시에 미국의 반격마저 모면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이끌어낸 이달 초 남북 고위급 회담이 북핵 협상의 재개로 이어질 것 같지는 않다. 도리어 경기가 끝나면 북한은 북핵과 무관한 다른 분야에서 탐색전을 벌이는 데 모처럼만에 재개된 대화국면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고, 결과적으로 과거에도 반복됐던 것처럼 한미 관계에 힘든 쟁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표시한 김정은의 신년사가 진심 어린 새해 결심은 아니었던 셈이다. 도리어 그의 책략은 한미 동맹을 약화시키려는 북한의 오랜 정책의 연장선상이나 다름없다.
김정은이 남한에 손을 내민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다.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국과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게 가능하다는 점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 때문이다. 보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김정은은 동경해마지 않던 나머지 스스로 인정해 버린 핵 무력과 관련해 전세계가 지켜보는 앞에서 북한의 지위를 정상화하고 싶은 것이다.
김정은은 이런 목표를 성취할 경우 한미 동맹 균열도 가능할 것으로 믿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는 또 트럼트 대통령이 미국에서 최악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훨씬 더 낮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이런 점을 ‘핵 정상국가(nuclear-normalization)’ 목표를 달성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또한 북한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회피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김정은의 평화공세를 지금까지 잘 다루어 왔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북한 올림픽 선수단 및 응원단이 남한에 들어와 의심의 여지 없이 열띤 환영을 받았다. 또 남북 단일팀이 하나의 국기를 들고 경기장으로 입장, 관중들은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확실히 북한 주민들은 핵 프로그램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에 참가하도록 초대받은 게 아니라 도리어 핵 프로그램, 바로 그것 때문에 초대를 받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남한이야말로 북한이 가고자 하는 방향 내지는 노선에 대해 최근 들어 경외심 또는 공포감을 인식한 것으로 그들은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올림픽 참가가 북한에게는 ‘국제적 고립은 순간에 불과하며 전세계가 인정하는 핵 보유국으로 진입하는 톨게이트’라는 의미를 시사할 수도 있다. 그들은 머지 않아 여타 국가들이 북한을 외교 테이블에 앉히기 위해 줄을 서기 시작할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한국 정부가 올림픽 정신에 유혹당하지 않을 것임을 이미 분명히 했다. 북한 지도자들이 올림픽 참가를 통해 핵 보유국가 지위를 인정받을 심산이라면 상당히 오랫동안 기다려야 할 것이다. 한국 정부의 목표는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데 있다. 지난 1년 동안 많은 국가들이 평창 올림픽에 대표단을 파견해도 안전할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던 게 사실이다. 올림픽 경기가 끝나면 북한은 오욕과 고립의 긴 겨울을 직면하게 될 것이다.
특히 한국 정부가 개성공단 재개를 북한에 요청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개성공단은 2003-2009년 남북 화해 시기에 남북이 야심차게 추진한 협력 사업의 하나였지만 문 대통령은 (2016년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통일부가 전면 폐쇄를 선언하면서 가동이 중단된) 개성공단의 재개와 관련해 어떠한 관심을 표명한 적이 없다. 한국 정부가 일방적 양보를 한다고 해서 북한의 행동에 맞서는 여타 강대국의 입장과 비교할 때 한국 정부의 입장을 크게 개선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문 대통령은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자존심이야말로 트럼프 대통령의 진심으로 통하는 길임을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여타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혐오국가에 맞서 역사적으로 강력한 제재에 참여하고 있는 국가들과의 보다 폭넓은 전선을 관리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올림픽 직후 한미 연합사령부가 연합 군사훈련 재개를 결정해야 하는 시점이 문 대통령에게는 첫 번째 큰 시련이 될 것이다.
북한은 항상 그랬듯이 연합 훈련에 반대할 게 분명하다. 중국과 러시아도 미국이 ‘올림픽 해빙’을 역류시킨다며 비난하며 반대할 것이다. 그렇지만 훈련 없는 군사 동맹은 악기 없는 오케스트라나 마찬가지다. 골치 아프고 복잡한 관계일지는 몰라도 한미 관계의 중요성이 세계 어떤 국가와의 파트너십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문 대통령이 이를 모를 리 없다.
문재인 정부처럼 진보적 정부일수록 대미 관계를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점을 대내적으로 확신시켜 줄 필요가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문 대통령이 잘 하고 있다. *()안 고딕체는 역자 주.
크리스토퍼 힐 전 주한 미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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