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 들어온 이기정(23)의 눈은 붉게 충혈돼 있었다.
믹스더블(혼성 2인조) 컬링 장혜지(21)-이기정이 ‘세계 최강’ 스위스의 벽을 넘지 못하고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예선 탈락했다.
장혜지-이기정은 10일 강릉 컬링센터에서 예선 6차전에서 스위스의 제니 페렛(27)-마르탱 리오스(37)에게 4-6으로 패했다. 페렛-리오스는 지난 해 세계선수권 금메달 팀으로 이번 올림픽의 우승 후보다. 이날 오전 러시아 소속 올림픽 선수(OAR) 아나스타샤 브리즈갈로바(26)-알렉산드르 크루셸니트키(26)에 연장 끝에 5-6으로 분패한 데 이어 스위스에도 무릎 꿇으며 2승4패가 된 한국은 11일 세계 1위 캐나다와 7차전이 남았지만 8개의 출전 팀 중 4위까지 주어지는 플레이오프에는 진출할 수 없게 됐다.
경기 뒤 예선 탈락이 확정됐다는 걸 알게 된 장혜지-이기정은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한다. 장혜지는 인터뷰를 사양한 채 고개 숙이며 경기장을 빠져나갔고 대신 이기정이 취재진 앞에 섰다. 그는 “우리가 부족해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 힘들다고 내려놓지 말고 하루라도 더 열심히 했으면 좋은 결과 있었을 것 같다”면서도 “최선을 다했다. 제 경기력에 대한 아쉬움보다 관중들 응원에 보답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했다.
컬링은 평창올림픽 초반 분위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한 일등 공신이다. 컬링 경기가 열릴 때마다 ‘컬링’ ‘컬링 규정’ 등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고 “엄청 재미있다”는 입소문이 퍼지고 있다. “결과는 기대에 못 미쳤지만 컬링이 대중들에게 사랑 받는 종목이 되는 데 일조한 것 아니냐”고 묻자 이기정은 또 다시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저같이 보잘 것 없는 선수를 응원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원하는 결과는 못 얻었지만 그의 나이 이제 스물 셋이다. 미래가 창창하다. 장반석 믹스더블 대표팀 감독에 따르면 다른 팀 출전 선수들이 어린 나이에 놀라운 기량을 지닌 장혜지-이기정에게 찬사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이번 대회에 한국 선수들을 ‘원 포인트 레슨’하고 있는 짐 코터(44) 코치의 고국이자 컬링 최강국인 캐나다에서도 “장혜지-이기정을 응원 한다”는 격려 메시지가 답지하고 있다. 이기정은 “베이징(2022년 동계올림픽 개최지)은 무조건 갈 것”이라며 “지난 해 세계주니어선수권 때도 우리 남자대표팀을 보고 다들 메달권이 아니라고 했지만 해냈다.(이기정이 스킵으로 남자 팀 우승 차지) 이번 올림픽에서 메달은 못 땄지만 가능성을 봤다. 올림픽 메달을 딸 때까지 도전할 것”이라고 입술을 깨물었다.
한국 컬링은 남녀 4인조 경기를 남겨놓고 있다. 특히 남자대표팀에는 이기정의 쌍둥이 형 이기복(23)이 동생이 못 이룬 꿈에 도전한다. 이기정은 “우리 남녀 대표팀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저희를 향한 성원을 남녀 팀에 보내 달라”며 “우리 형은 저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에 팀을 더 잘 이끌 것이다. 나도 직접 응원을 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캐나다와 마지막 경기까지 최선을 다해 응원에 보답하겠다”고 약속했다.
강릉=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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