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글로벌Biz리더] 인공지능 왓슨의 어머니, 새로운 인재 ‘뉴칼라’ 예고

입력
2018.02.10 09:00
14면
0 0

시스템 엔지니어로 첫 발

초고속 승진 최고 자리에 올라

주력사업 하드웨어 판매 접고

클라우드ㆍAI 등 신성장 사업으로

작년 23분기 만에 매출 증가

화이트칼라ㆍ블루칼라 아닌

4차 산업혁명 주도할 직업 강조

107년 전통 글로벌 IT기업 IBM의 첫 여성 최고경영자(CEO) 버지니아 로메티. 2012년 취임 이래 인공지능, 클라우드서비스, 블록체인 등 신성장 사업을 통한 혁신 경영을 펼치고 있다. IBM 페이스북
107년 전통 글로벌 IT기업 IBM의 첫 여성 최고경영자(CEO) 버지니아 로메티. 2012년 취임 이래 인공지능, 클라우드서비스, 블록체인 등 신성장 사업을 통한 혁신 경영을 펼치고 있다. IBM 페이스북

1911년 미국에서 설립된 글로벌 정보기술(IT)기업 IBM. 창사 이래 IT업계의 뛰어난 실력자들이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랐지만, 2012년부터 IBM호(號) 선장을 맡고 있는 버지니아 로메티(60)는 조금 더 특별하다. 107년 IBM 역사상 첫 여성 CEO이기 때문이다.

IBM 첫 여성 수장된 ‘성공보증 수표’

IBM의 CEO로 내정되기 전까지 로메티의 이름은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IT업계에서는 ‘성과 보증 수표’로 통하며 오랜 기간 탄탄한 입지를 구축해 온 유명인사다. 그는 노스웨스턴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1975~1979)하고 1981년 IBM에 입사해 37년간 근무한 ‘IBM맨’이다.

시스템 엔지니어로 입사했지만 로메티는 1991년 컨설팅 부문을 맡아 전천후 업무 능력을 보여줬다. 특히 2002년 IBM이 다국적 회계컨설팅기업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의 컨설팅 부문을 35억 달러에 인수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업계에서는 이 인수를 계기로 IBM이 기존 컴퓨터 제조 등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며 현재의 위용을 갖춘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고속 승진을 거듭한 그는 2009년 판매ㆍ마케팅ㆍ전략 담당 부사장에 올라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시장 진출을 주도했고, 2011년 10월 CEO로 내정돼 이듬해 취임했다. IBM은 “2010년 매출이 990억 달러를 돌파하는데 로메티의 역할이 컸다”며 내정 이유를 밝혔다.

지난해 실리콘밸리 임원급 중 여성 비율이 11%에 그칠 만큼 남성 중심적인 IT업계에서 로메티는 실력으로 경쟁자를 압도하며 최고 자리에 올랐다. 전임 CEO인 새뮤얼 팔미사노는 “지니(로메티의 애칭)는 그 일을 할 능력이 있다”며 “성(性)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조지 콜로니 포레스터연구소 CEO는 “로메티는 성과와 카리스마를 결합한 인물”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이 선정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기업인 50인’에 2005년부터 11년 연속 이름을 올린 로메티는 지난해엔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보통신기술(ICT) 기업가’ 15위에 올랐다.

“위기감이 성장의 열쇠”

“편안함과 성장은 절대 공존할 수 없다. 위기감이 성장의 열쇠다.” 로메티의 신조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위험을 감수하는 그의 도전정신은 IBM의 혁신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설립 초기 시계와 저울, 계산기 등을 생산했던 IBM은 1950년대부터 컴퓨터로 관심을 돌렸다. 1990년대 PC시장이 경쟁 과열의 ‘레드오션’으로 변하자 핵심 조직인 PC사업부를 과감히 매각하고, 비즈니스 소프트웨어와 ICT 서비스 시장으로 눈을 돌려 통합 솔루션 회사로 체질 개선에 나섰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 개발에도 적극 나서면서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있다. 한때 경쟁사였던 HP와 델이 주력 사업 전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러한 IBM 변화의 중심에는 항상 로메티가 있었다. 그는 2014년 ‘x86’ 서버 사업을 중국 레노버에 매각하는 등 주력 사업이던 하드웨어 판매에서 손을 떼고, 클라우드 서비스, AI, 블록체인 기술, 모바일 등 신성장 사업을 ‘필수 전략(strategic imperatives)’ 부문으로 삼고 회사 역량을 집중시켰다. 지난해에는 월마트, 네슬레 등 글로벌 유통기업과 함께 블록체인을 활용한 전 유통과정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했다. 로메티는 “IBM이 현재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의 45%가 지난 2년간 도입된 것”이라며 “IBM은 창립 이래 끊임없는 자기혁신과 위험 감수를 통해 선도적 업무기술 업체의 위상을 유지해왔다”고 강조했다.

일본 소프트뱅크가 출시한 로봇 페퍼. IBM의 인공지능(AI) 플랫폼 왓슨이 탑재됐다. IBM 페이스북
일본 소프트뱅크가 출시한 로봇 페퍼. IBM의 인공지능(AI) 플랫폼 왓슨이 탑재됐다. IBM 페이스북

왓슨 상용화 주역…”뉴칼라가 주목받을 것”

로메티는 최근 AI 플랫폼 ‘왓슨’에 공들이고 있다. IBM이 2004년부터 개발해온 왓슨은 방대한 분량의 빅데이터를 인간과 가까운 방식으로 분석하고 자연어(인간이 말하는 그대로의 언어)에 가깝게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슈퍼컴퓨터다. 로메티는 2014년 1월 전담 신사업조직 왓슨그룹을 만들고 왓슨 상용에 나서 수익성 높은 사업으로 키웠다. 여러 IT기업이 AI를 개발하고 있지만 실생활에 밀접하게 사용되며 수익을 내는 곳은 IBM이 독보적이다.

2011년 미국 인기 퀴즈쇼 ‘제퍼디’에서 인간을 꺾고 우승하며 주목 받은 왓슨은 현재 세계 24개국에서 금융, 의료, 쇼핑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왓슨이 탑재된 일본 소프트뱅크의 AI 로봇 ‘페퍼’는 일본 은행, 휴대폰 매장 등에서 사람의 업무를 대신하며 인기를 끌고 있고 있다. 국내에서는 SK C&C과의 협업을 통해 지난해 9월 공개된 한국어 버전 ‘에이브릴’이 금융,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된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016년 IBM의 왓슨 관련 매출을 엔화로 환산하면 1조엔(약 10조5000억원)으로 추산된다고 보도했다.

로메티는 AI 대중화로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란 우려에 대해 “일자리가 기술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새로운 교육방식으로 양성된 ‘뉴(new)칼라’ 인재가 향후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움직일 것”이라고 강조한다. AI 시대에는 화이트칼라(전문 사무직)ㆍ블루칼라(생산직 등 노동자)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인재가 주목 받을 것이란 얘기다. 로메티는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되자 “앞으로 대학 졸업장은 중요하지 않다”며 “인공지능과 정보기술을 다룰 실무자를 육성할 학교를 세울 테니 도와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트럼프에게 보내기도 했다.

23분기만의 매출 증가…안정적 실적이 관건

로메티의 아킬레스 건은 매출 부진이다. 기존 사업을 과감히 매각하며 신성장 사업으로 전환했지만, 오랫동안 가시적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 로메티의 노력을 지지하던 투자자 중 일부는 인내심에 바닥을 드러냈다. 2011년 IBM 지분 5.4%를 사들였던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지난해 보유 지분 절반을 매각하기도 했다.

취임 이래 22분기 연속 매출 감소에 시달렸던 로메티는 지난해 드디어 반등의 계기를 잡았다. 지난해 4분기 IBM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3.6% 늘어난 225억4,000만 달러(약 25조원)를 기록했다. 로메티 취임 이래 첫 매출 신장이다. “앞으로 매출이 계속 오를 것”(CNBC)이라는 낙관적 전망도 나오면서 로메티는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됐다.

IBM의 실적 반등을 두고 그간 더딘 성장을 보였던 신성장 사업들이 점차 시장에 안착하고 있다는 징표라는 분석이 나온다. 로메티가 취임 이래 야심차게 추진한 ‘필수 전략’ 사업의 지난해 4분기 매출은 총 매출(225억 달러)의 49%(111억 달러)를 차지했다.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도 17%에 이른다. 지난해 전체로 봐도 필수 전략 사업의 매출은 전년 대비 11% 늘어난 365억 달러를 기록, IBM 전체 매출에서 46%를 차지했다. 제임스 카바노 IBM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올해 말까지 신성장 사업을 통해 연간 40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게 목표”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부정적 전망도 없지 않다. 케이스 배치먼 BMO캐피털마킷 애널리스트는 “IBM의 사업 이동은 아직 초기 단계”라며 “비슷한 이행을 거치고 있는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전례를 볼 때 IBM 역시 향후 몇 년 간 매출과 이익에서 역풍이 불 수 있다”고 내다봤다. IBM의 ‘변신’이 안정적인 실적을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더 소요될 수 있다는 의미다.

좀처럼 오르지 않는 주가도 로메티호의 고민이다. 지난해 4분기 실적을 발표한 지난달 18일 IBM 주가는 주당 169.12달러로, 1년 전과 큰 변동이 없다. 같은 기간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500지수는 23%나 올랐는데 말이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5일 뉴욕 증시 폭락으로 IBM 주가는 장중 한때 150.00달러까지 떨어지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