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김정은 전용기로 인천 도착
롱코트ㆍ부츠ㆍ가방 모두 검은색
서열 높은 김영남, 귀빈실 앞에서
金 도착 기다리며 대기 ‘철저 예우’
조명균 장관 앞자리 서로 양보도
호위총국 소속 경호원 철통 수행
KTX로 평창 이동… 개회식 참석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9일 ‘백두혈통’ 최초로 남쪽 땅을 밟았다. 북한 실세 중의 실세일 것이라는 예상대로 오빠가 내준 전용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한 김 제1부부장을 북측 경호원들은 철통 같이 경호했고, 평창 동계올림픽 북측 고위급 대표단 단장이자 북한 헌법상 국가 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도 김 제1부부장을 철저히 예우하는 모습이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 제1부부장과의 첫 대면은 이날 오후 8시 12분쯤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이뤄졌다. 문 대통령은 다른 외빈들과 차례로 인사를 나누다 김 제1부부장과도 악수하며 인사말을 건넸다. 김 제1부부장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문 대통령이 내민 손을 잡으며 가볍게 인사했다.
앞서 김 상임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북측 고위급 대표단은 이날 오후 1시 47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고위급 대표단은 김 제1부부장을 비롯, 최휘 국가체육지도위원장,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으로 구성됐다. 리택건, 김성혜 등 북측 보장성원(지원 인력) 16명과 기자 3명도 방남길에 함께 했다.
정부는 통일부 조명균 장관과 천해성 차관, 남관표 국가안보실 2차장을 공항에 보내 북측 인사를 맞았다. 김 상임위원장 두 걸음 뒤에서 비행기를 내린 김 제1부부장은 남측 인사들의 환영 인사에 미소 지으며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김일성 북한 주석 일가를 일컫는 소위 ‘백두혈통’ 중 처음으로 남쪽 땅을 밟은 김 제1부부장은 단정한 차림이었다. 목과 손목 부분에 퍼(furㆍ털)가 달린 검은 롱코트 차림에 검은 부티(발목을 덮는 부츠)를 신었다. 소지한 가방 역시 검은 색이었고, 머리는 꽃 장식이 달린 핀으로 고정했다. 시종일관 미소 띤 얼굴에선 여유가 느껴졌다.
김 제1부부장은 김 상임위원장보다 북한 내 명목상 서열은 낮다. 그러나 사실상 실권을 쥐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 곳곳서 포착됐다. 환담 전, 김 상임위원장은 조 장관 안내를 받아 공항 귀빈실로 들어서다 갑자기 멈춰 섰다. 김 제1부부장을 기다리기 위해서였다. 몇 초쯤 후 김 제1부부장이 웃으며 입장하고 나서야, 김 상임위원장은 테이블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의자에 앉을 때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김 상임위원장은 김 제1부부장에게 먼저 자리에 앉을 것을 권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상석에 앉게 하기 위함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그러나 김 제1부부장은 이를 사양하며 김 위원장을 조 장관 바로 맞은 편에 앉도록 했다.
환담에선 날씨를 주제로 대화하던 조 장관이 “요 며칠 전까지는 좀 추웠다. 그런데 북측에서 이렇게 귀한 손님들이 오신다고 하니까 날씨도 이렇게 따뜻하게 변한 것 같다”고 하자, 김 상임위원장은 "예전에 우리가 동양예의지국으로 알려진 그런 나라였는데 이것도 우리 민족의 긍지 중 하나라고 생각됩니다"라고 화답했다. 김 제1부부장은 입을 열지 않았지만, 표정은 밝았다.
환담을 마친 대표단은 차량을 타고 공항과 연결된 KTX 역사로 이동했다. 북측 인사 이동 동선에 따라 폴리스라인이 설치됐고, 경찰 의전용 오토바이 등이 북측 대표단이 탑승한 차량 앞뒤로 경호했다.
역사 이동 중 북측 경호인력은 김영남 상임위원장과 김 제1부부장 주변에 집중 배치됐다. 특히 짧게 머리를 깎은 건장한 체구의 북측 경호원들은 귀에 무전기용 이어폰을 꽂고 일부는 검은 선글라스를 쓴 채 김 제1부부장을 밀착 수행했다. 이들 경호인력은 북한 호위총국 소속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당시 북측 고위급 3인방(최룡해ㆍ황병서ㆍ김양건) 방남 때 북측 경호인력이 처음으로 남측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인력과 경호 강도에서 훨씬 더 집중적이었다. 김 제1부부장의 북한 내 위상이 여실히 확인되는 대목이었다.
북측 대표단은 오후 2시 34분 인천공항역에서 강원 평창 진부역으로 향하는 KTX 3호차에 탑승했다. 이 열차는 정부가 특별 편성한 것으로, 정세균 국회의장을 비롯한 300여명은 서울역에서 함께 탑승했다. 김 상임위원장은 평창 진부역 도착 후 각국 정상급 인사들이 참석하는 문재인 대통령 주최 평창올림픽 개회식 전 리셉션에 참석했다. 리셉션 참석 대상이 아닌 김 제1부부장은 개회식에만 모습을 드러냈다.
앞서 북측 대표단은 김정은 위원장 전용기인 ‘참매 2호’를 타고 남한을 찾았다. 전용기는 평양을 출발, 서해 직항로를 이용했다. 편명은 ‘PRK-615’. 615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1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던 2000년 6ㆍ15 공동선언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동생 김여정이 포함된 대표단 예우 차원에서 김 위원장이 친히 전세기를 내어줬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흰색 기체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글씨와 인공기를 새겼고, 꼬리 부분에는 파란색ㆍ빨간색 원 안에 별을 그려 넣어 김정은 위원장 전용기임을 표시했다. 1980년대 구 소련에서 들여온 일류신(IL)-62형을 개조한 것으로 회항 전력이 있을 정도로 노후했다. 대표단은 2박 3일 방남 일정을 수행한 뒤 11일 북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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