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교육개혁이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수능 절대평가 확대 개편은 여론의 역풍을 맞아 결정이 1년 유예됐다. 유치원 영어수업 금지도 원점에서 재검토하게 됐고, 외고·자사고의 우선선발권 폐지는 8학군 부활 논란에 휩싸여 있다. 내신 절대평가와 고교학점제 도입도 결코 순탄할 것 같진 않다.
진보 정권이 야심 차게 추진 중인 교육개혁이 왜 이리 표류하고 있을까. 사전 정지작업과 우선순위 설정에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여건이 불비하고 준비가 미흡한데도 조급하게 무리수를 둔 측면이 있다. 이 때문에 본격적인 교육개혁은 첫발조차 제대로 떼지 못했다.
지금처럼 교육개혁 과제를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고자 할 때는 무엇보다 킹핀을 적확하게 공략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일이 꼬이면서 심각한 혼란이 발생할 공산이 크다. 교육개혁의 킹핀은 그걸 먼저 건드려야 다른 과제의 추진도 순차적으로 원활하게 이루어지게 되는 맥점을 가리킨다.
필자가 생각하는 교육개혁의 킹핀은 대학의 변화, 특히 대입전형의 혁신이다. 대입전형 혁신을 교육개혁의 킹핀으로 여기는 까닭은 그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교육적으로 심대한 의미를 갖는 내신 절대평가조차 시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만일 내신은 상대평가를 유지하면서 수능만 절대평가를 실시하면 내신 경쟁은 한층 격화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수능 절대평가의 교육적 효과는 대부분 상쇄될 가능성이 크다.
그간 우리 사회에서 대입전형은 중등교육의 내용 및 방식 전반을 철저히 규정해왔다. 이런 현실에서 교육생태계의 ‘갑 중의 갑’인 유수 대학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진지한 고민이나 성찰 없이 기존 서열과 평판의 유지에 급급한 행태를 보였다. 그 결과 우리 사회에서 성적지상주의는 날로 강화되었고 미래지향적 교육개혁은 착수 자체가 어려웠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교육부가 가장 역점을 둘 일은 유수 대학이 입시업체의 배치표를 의식한 변별력 타령을 접고 미래지향적 교육경쟁을 벌이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어떤 과정을 거쳐 얻은 성적이건 조금이라도 높은 성적을 제출한 지원자를 선발하는 걸 당연시하는 전근대적 줄 세우기에서 대학이 탈피하도록 도와야 한다. 나아가 이런 노력의 연장선상에서 대학이 신입생 선발에서 사회경제적으로나 지역적으로 다양성을 담보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배경 또는 특성을 가진 학생들이 한데 모여 생활하면 여러 가지 긍정적 효과가 창출될 것이다. 우선 낯섦과의 일상적 조우는 창의성 발현을 촉진하리라 예상된다. 민주시민의 일원으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회적 태도의 함양도 좀 더 원활해질 것이다. 저소득층 학생의 계층상승 가능성을 높이고 대입전형에서 사교육의 효과를 현저히 약화시키는 효과도 기대된다. 교육적 효과는 아니지만 외고·자사고 우선선발권 폐지가 강남 집값을 들썩이게 할 것이란 우려 역시 상당 부분 불식할 수 있다.
대학이 신입생 선발 과정에서 다양성을 중시하도록 하려면 대학평가에 신입생 구성의 다양성 지표를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아울러 공교육 정상화 차원에서 이 지표의 개선을 위해 힘쓰는 대학에겐 충분한 재정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현재 정부는 대학지원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지만 공교육 정상화에 기여하는 대학을 지원하기 위한 예산의 비중은 미미한 편이다. 이 예산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대학 사회에 의미 있는 신호를 보내게 되어 정책의 실효성도 한층 높아질 것이다.
신입생 선발에서 출신 지역과 사회경제적 배경을 고려하는 건 세계 고등교육을 선도하는 미국 대학에서 광범하게 시행되는 정책이다. 국내 유수 대학도 이런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교육개혁의 킹핀이 되기엔 너무 유명무실한 수준에서 시행되어 바람직한 교육적 효과의 창출을 기대하기 난망인 게 문제다.
김경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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