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 폐지로 이민자 꿈 깨져”
美하원서 ‘드리머’ 구제 역설
성경 문구 인용하며 시간 채워
“‘아메리칸 드림’이 당도할 수 없는 곳으로 미끄러져 가고 있다. 공화당의 도덕적 비겁함은 끝나야 한다.”
미국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하원 원내대표가 7일(현지시간) 다카(DACAㆍ불법이민청년유예프로그램) 폐지 이후 대체 입법을 촉구하며 8시간 넘게 연단에서 내려오지 않고 연설했다.
워싱턴포스트 등 미 언론에 따르면 78세인 펠로시 대표는 이날 오전 10시4분 연단에 올라 8시간7분 동안 다카 폐지로 추방 위기에 놓인 일명 ‘드리머(Dreamer)’ 구제 입법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굽 높이가 10㎝인 하이힐을 신은 채 연단에 오른 펠로시 대표는 약간의 물로 목만 축여가며 드리머의 사연을 절절히 소개했다. 또 누가복음 10장의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 등 성경 문구를 인용하며 시간을 채워 나갔다.
미 하원 규칙 상 원내대표는 연설 시간에 제한이 없다. 펠로시 대표의 연설은 1909년 관세법을 둘러싸고 챔프 클라크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가 세운 5시간15분 최장 연설 기록을 뛰어넘은 것이다. 1909년 이전 하원에서 이보다 긴 연설이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트위터 이용자들은 펠로시 대표의 마라톤 연설을 미 상원에서만 인정되는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스타일의 ‘다카버스터(다카 입법을 위한 필리버스터)’라고 칭했다.
하지만 펠로시 대표의 노력은 이날 미 상원이 이민 문제 해결을 뒤로 미룬 채 장기예산안 처리에 합의해 빛이 바랬다. 상원 공화당의 미치 매코널 원내대표와 민주당의 척 슈머 원내대표가 연방 지출을 약 3,000억달러 늘리는 내용의 2년짜리 예산안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예산안과 다카의 동시 처리를 주장해온 민주당으로서는 이날 합의는 정치적 패배로 받아들여진다. 복지부문에 대한 예산 증액을 얻어내기는 했지만, 다카 폐지로 추방 위기에 내몰린 청년 69만명을 구제할 입법도 없이 양보한 것이다.
펠로시 대표는 미 공화당 하원 1인자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에게 드리머를 구제할 수 있는 입법을 지속적으로 촉구해 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오바마 전 행정부 때 만들어진 다카 폐지를 선언했고 이를 보완할 입법 시한으로 다음달 5일을 제시했다.
2007년부터 4년간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하원의장을 지낸 펠로시 대표는 미국 정계의 ‘유리천장(여성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을 깬 인물로 꼽힌다. 이탈리아 이민 가정 출신인 그는 전업주부로 5남매를 키우다 47세에 정계에 입문했다. 정치에 몸담게 된 것을 두고 ‘어머니 역할의 확장’이라고 밝힌 그는 정계 입문 초기부터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2007년 7월 미 하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촉구하는 결의안이 통과될 때 의장으로서 주요 역할을 했다. 2015년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미 상ㆍ하원 합동연설을 앞두고 하원 대표단 자격으로 한국을 찾아, “일본군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해 아베 총리가 어떤 형식으로든 사과하길 희망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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