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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의 어린이처럼] 어린이야

입력
2018.02.08 15:22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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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시인이 어린이 독자에게 당부한다. - 척하지 말라고. ‘척하다’는 말은 ‘행동이나 상태를 거짓으로 그럴 듯하게 꾸밈’을 뜻하는 말이다. 시인은 어린이가 이 많은 ‘척’을 한다고 말한다. 그 ‘척’의 구체적인 행동과 상황이 궁금하지만 드러나 있지는 않으니 나름대로 생각해보는 수밖에 없다.

먼저 어른인 척/어린이인 척. 어른인 척이란 마음에 안 드는 일도 참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의젓하다는 뜻일까. 그렇다면 혹시 어린이인 척이란 참을성 있으면서도 순진하게 즉흥적이고, 의젓하면서도 밝고 명랑한 태도를 말하는 걸까. 아는 척/모르는 척에는 어떤 사례가 있을까. 아는 척이 단지 잘난 척을 의미하지는 않는 듯하다. 어린이가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건 뭘까. 세상과 인간의 어둡고 쓸쓸하고 사악하고 음란한 일들? 하고 싶은 척이라 하면 어른들이 억지로 시키는 공부며 각종 스펙 쌓기 활동에 순순히 임하는 게 떠오르는데, 반대로 “하고 싶은 것만 하지” 말라는 건 무슨 뜻일까.

어린이들의 ‘척’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은 독자마다 다르겠다. 어린이, 어른, 어린이와 어른의 관계에 대한 각자의 생각과 경험이 반영될 테니까. 그러니 이 시에서 시인이 말하고자 했던 ‘척’을 알 수 없다 해도 상관없다. 내 대답에 비추어 어린이에 대한 내 시각을 돌이켜 볼 수 있는 것만으로 이 시는 동시로서의 소명을 충분히 다했다.

이 동시가 분명히 말하는 한 가지는 어린이가 수많은 ‘척’을 강제 당하는 약자라는 사실이다. 어린이는 어른의 규율에 따라 온갖 ‘척’을 요구 받는다. 때론 어른, 때론 어린이 같아야 한다. 때론 알아야 하고, 때론 몰라야 한다. “어린이는/어린이야”라는 동어반복의 정의는 어린이라는 존재가 어른에 의해 규정되고 좌우되며 수많은 ‘척’이 부여되는 상황을 거부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화나거나 역겹지 않은 척’을 강요받았던 여성들의 분노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더 이상 ‘없던 척’ ‘몰랐던 척’ 할 수 없다. 어린이, 여성, 장애인 등 소수자가 권력과 위계에 부당하게 억압받지 않는 자유롭고 정의로운 관계를, 동시 한 편을 읽으며 다시 한 번 소망하고 다짐한다.

김유진 어린이문학평론가ㆍ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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