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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나도 약자였다. 응원한다 ‘#미투’

입력
2018.02.08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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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미투 운동을 응원하는 팻말을 들고나와 경제 관련 대정부질문을 하고 있다. 뉴시스
6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미투 운동을 응원하는 팻말을 들고나와 경제 관련 대정부질문을 하고 있다. 뉴시스

벌써 25년이 지났지만 그 시절의 기억은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군에 갓 입대했을 무렵, 100명 남짓 부대원 가운데는 또래의 ‘별종’이 하나 있었다. 선임병에 의한 구타나 집단 얼차려가 대수롭지 않던 시절, 그는 유난히 그 폭력을 참아내지 못했다.

어느 날 장교를 찾아가 자신과 졸병들에게 반복되는 횡포를 고발했고, 부대는 한바탕 소동을 겪어야 했다. 한동안 선임병 몇몇이 주임원사실에 불려 다녔다. 기강해이라는 이유로 부대원 전체는 몇 차례 군장도 쌌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폭력의 내부고발을 접한 부대장은 그를 영창으로 보냈다. 정확한 죄명은 어렴풋하지만, 부대원들이 저마다 반대로 그를 씹어 돌린 결과였던 걸로 기억한다. “업무시간에 농땡이를 피운다” “선임병의 정당한 지시도 따르지 않는다” 같은.

영창을 다녀온 이후 그는 서서히 ‘투명인간’이 됐다. 하극상을 당한 선임병뿐이 아니었다. 함께 머리를 박던 또래들마저 “고자질이나 하는 더러운 놈”이란 손가락질과 함께 그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배신자를 향한 집단의 증오는 그 이후 들어온 신병들에게도 대물림 됐고, 그는 결국 병장을 달고도 고참 취급 한 번 받아보지 못한 채 군생활을 마치고 말았다.

25년이 지난 지금, 그는 자신의 군생활을 어떻게 추억할까. 가끔 그 시절을 떠올릴 때면 나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지금 와 생각해도 그의 용기는 잘못이 아니었는데, 같은 횡포를 겪고도 그저 군중심리에 편승했던 나는 하나 내세울 게 없어서다.

어디 군생활뿐이랴. 학창시절 학급을 지배하던 ‘주먹의 질서’ 앞에도 나는 저항보다 순응을 택했다. 주먹 앞에 나는 약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내 자존심 하나 겨우 건사할 만큼의 힘을 지녔던 나는, 나를 직접 겨누지 않는 한 학급 내 왈패들의 무수한 횡포에 애써 무심한 척했다. 가끔은 울컥하고, 속에서 열불이 치밀 때도 있었지만 공연히 나섰다가 자초할 초라해짐이 두려웠다고 할까.

서지현 검사가 불러 일으킨 ‘미투’ 행렬에 여전히 다수 남성들은 한 발짝 물러서 있는 인상을 받는다. 여성들의 잇단 고백을 ‘오버’라 뭉개기까진 않더라도, ‘적어도 난 그런 파렴치가 아니다’ ‘나와는 무관한 일’이란 생각에 기대는 듯싶다.

하지만 나는 이 문제가 남성들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장 성폭력이 화두여서 그렇지, 이런 일방적인 가해와 피해 구조는 남녀간 성별 차이를 넘어 근본적으로 강자와 약자의 관계에서 비롯된다고 보여서다. 만성화된 강자의 횡포에 누적된 약자의 울분이, 처음 한 두 사람의 외침을 들불처럼 퍼뜨리는 원동력이 아닐까.

분명 한국 사회에서 남성은 여성보다 강자다. 남성은 태생적으로 물리력이 앞선다. 세월을 거치며 굳힌 남성 중심의 도덕에, 각종 헤게모니까지 선점하고 있다. 여성의 입장에서 우리 같은 유교문화권 사회 남성은 이미 일종의 특권층에 가까울 것이다. 그가 나쁜 사람이건 아니건.

그런데 남성은 다른 문제에서도 늘 강자인가. 여기저기서 아니라는 손사래가 보인다. 군과 학창시절뿐인가. 주먹 떨리는 억울함을 당해도 주변 시선에, 상황에, 이런저런 관행에 꼼짝없이 찌그러져야 했던 굴욕감이 나만의 것은 아닐 테다. 대기업의 갑질 앞에 선 하청기업. 있는 자들에게 관대한 사회 구조.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여성들과 함께 반란을 이끌지 못할지언정, 약자들의 연대 차원에서라도 남성의 공감은 필요하다. 나도 한때 약자였음을 떠올리며, 언제라도 약자가 될 수 있음을, 그래서 지금 약자들의 외침에 작게나마 응원을 보내는 마음. 대한민국 남성으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한다.

25년 전 그를 만나면 “미안했다. 나도 공감한다”고 말해 주고 싶다. 그리고 고백한다. “나도 약자였다. 응원한다 #미투”.

김용식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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