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전 완강기ㆍ소화기 등 체크
복도ㆍ계단 물품 보관도 줄어
“시민의 화재대비 일상화 긍정적”
“비상계단은 어디죠? 방화문은 제대로 닫혀있나요?”
정선영(20)씨는 대학 입학을 앞두고 최근 서울 마포구 소재 오피스텔 계약 전 건물 내 소방안전시설을 살폈다. 제천(29명 사망) 밀양(45명 사망) 등 지난해 연말부터 잇따라 벌어진 화재 참사에 충격을 받아서다. 대형 화재 때 문제가 된 스프링클러 설치 및 방화문 작동 여부를 묻고 비상계단과 소화기 위치까지 살핀 뒤에야 주택임대차계약서에 서명했다. 7일 정씨는 “가족과 아파트 1층에만 살아서 화재 대피에 대한 고민을 한 적이 없는데, 고층(7층)에 홀로 살게 되니 인식이 바뀌었고 막상 소방시설을 한 번 확인해 두니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대형 화재가 빈발하면서 일상 곳곳에서 ‘대피의 기본’을 새기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새로 살게 될 집은 물론, 기존 거주지에서도 비상대피통로와 방화문 작동여부를 스스로 확인하는 노력이 대표적이다.
이런 현상은 새 집을 구하는 대학 신입생 등에게서 눈에 띈다. 마포구에서 공인중개사로 일하는 오모(55)씨는 “지난해 입학철만 해도 소방안전시설은 깐깐한 성격의 부모나 이따금씩 살폈지만, 이젠 많은 부모와 학생이 함께 살핀다”고 했다. 다른 공인중개사는 “4, 5층짜리 다세대주택 계약자들도 이전과 달리 완강기나 소화기 설치 여부를 꼼꼼히 확인한다”고 전했다. 집 위치와 크기, 구조, 옵션 등 주요 선택 기준에 화재 안전 여부도 추가되고 있다는 얘기다.
고층 건물 관리사무소는 아예 비상대피통로 적치(積置)물품 정리 계획을 통보하는 등 자구책을 내놓고, 주민 협조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지난달 서울 은평구 한 오피스텔 곳곳엔 ▦고양 종합터미널 화재(9명 사망) ▦장성 요양병원 화재(21명 사망) ▦의정부 오피스텔 화재(5명 사망) ▦동탄 주상복합빌딩 화재(4명 사망) 등을 차례로 언급하면서 ‘인명 보호 및 화재 예방을 위해 2월부터 모든 무단 적치물품을 임의로 처분하겠다’는 경고문이 붙었다.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이후 실제 복도에 내놓은 자전거나 비상계단에 놓인 상자가 사라지는 등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소방당국과 전문가들은 ‘화재대비 일상화’ 확산을 반겼다. 소방청에 따르면 4년 전(2014년) 17.89%던 주택화재 발생률은 차츰 높아져 지난해 18.51%를 기록했다. 소방 관계자는 “화재로 인한 전체 사망자 중 주택화재 사망자 비율이 50% 수준”이라며 일상에서의 화재 예방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지난해 7월부터 공인중개사법 시행규칙이 개정돼, 공인중개사가 주택 임차인에게 단독경보형감지기(주택화재경보기) 설치 여부와 수량을 반드시 확인ㆍ설명하도록 했지만, 정착이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소방당국 설명이다.
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큰 피해를 계기로 생긴 시민들의 안전의식 변화는 매우 긍정적”이라면서도 “이런 변화가 건물주들의 소방시설 설치 확산 등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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