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피해자 측의 폭로로 동성간 성폭행의 가해자로 지목된 영화감독이 사실을 부인하고 나서면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대법원의 확정 판결로 유죄가 인정된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7일 영화계에 따르면, 영화 ‘연애담(2016)’으로 지난해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이현주 감독은 2015년 후배 여성감독 A씨를 성폭행한 혐의(준유사강간)로 지난해 12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다.
이 사실은 A씨의 약혼자로 알려진 B씨가 2일 온라인 커뮤니티 ‘엠엘비파크’에 폭로하면서 알려졌다. B씨는 “이 감독이 반성의 기미도 없이 최종심이 선고된 이후에도 아무 일 없는 듯 공식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며 “뻔뻔하게 활보하고 있는 가해자를 보는 게 너무나 괴롭다”고 이를 공개한 이유를 밝혔다.
B씨에 따르면 성폭행은 2015년 4월 새벽 한 숙박업소에서 일어났다. 이날 A씨는 이 감독, 남자 선후배 3명과 밤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A씨가 만취하자, 동석자들은 그를 인근 숙박업소로 옮겼다. 그런 뒤 남자 동료들은 ‘여자 혼자 숙박업소에 머물면 위험하다’며 이 감독에게 A씨를 보살펴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이 감독은 A씨와 함께 하룻밤을 보냈고, A씨가 술 기운에 잠든 사이 그를 성폭행했다.
B씨의 글에는 애초 가해자의 이름이 익명 처리돼 있었다. 이 때문에 폭로 초반만 해도 가해자가 누군지 추정만 무성했다. 하지만 이 감독이 직접 입장을 내놓으면서 본격적으로 공론화됐다. 이 감독은 6일 보도자료에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무죄를 주장했다.
이 감독은 “피해자 A씨와 매우 친밀한 사이였다”며 “사건 당일 A씨가 잠에서 깨더니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으며 한참을 울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런 피해자를 위로하던 중 자연스럽게 성관계를 가지고 됐다”고 덧붙였다.
이 감독은 “당시 저로서는 피해자가 저와의 성관계를 원한다고 여길 만한 여러 가지 사정들이 있었다”며 “다시 잠에 든 피해자가 깨어나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내게) 묻자 몹시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이 감독은 “만약 피해자 동의 없이 범행을 저질렀다면, 애초 피해자가 잠에서 깨어나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말했을 때 ‘아무 일도 없었다’며 무마하려고 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무마하거나 축소시키려 한 적이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A씨에게 성관계 사실을 알렸고, 수사ㆍ재판 과정에서도 모든 사실을 털어놨는데 자신이 정말 성폭행을 저질렀다면 이렇게 했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A씨는 이를 “치졸한 변명”이라고 반박했다. A씨는 6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이현주의 ‘심경고백’ 글을 읽고 쓰는 글”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한숨부터 나온다. 가해자는 변명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정말로’ 내가 원해놓고 뒤통수 친다고 믿고 있는 걸로 보인다”며 “그날 사건에 대해 생각하기도 싫어서 세세하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은 또 하게 된다”고 했다.
해당 글에서 A씨는 당시 술자리에 누가 참석했고, 몇 시까지 마시다가 취했는지, 사건 이후 어떤 상황이었는지 등을 자세히 설명했다. 이어 자신은 ▦성소수자가 아니고 ▦당시 성관계에 동의한 적 없으며 ▦재판 과정에서 가해자인 이 감독으로부터 사과 한 마디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유죄를 선고한 1심 판결문 일부를 인용하며 “당신의 그 길고 치졸한 변명 속에 나에 대한 사죄는 어디 있는가”라고 했다.
파문이 확산되자, 영화진흥위원회는 조사팀을 꾸려 진상 규명에 착수했다.
양원모 기자 ingodzo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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