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31일 자정, 보신각 종소리와 함께 도심에는 새해를 알리는 폭죽이 요란했다. 재야의 종 타종과 함께 방송에서는 무술년 황금 개띠해가 밝았다고 난리다. 그리고 새해 첫 아이의 탄생 소식이 매스컴을 타고 흘러나온다. 그러나 잠깐, 한 번만 더 생각해보자. 2018년 새해가 밝은 것이 무술년의 시작이라고? 2018년 1월 1일은 양력이므로 신년은 될 수 있어도 무술년은 될 수 없다. 즉 이는 언론의 쓸데없는 호들갑이자 명백한 오보인 것이다.
그런데 또 한 번 더 딴지를 걸어보면, 예전에는 자시를 기준으로 날짜가 바뀌었다. 그러므로 자시의 중간인 자정(子正)은 실은 해가 바뀌고 1시간이 경과한 때이다. 이런 점에서 12월 31일 자정에 해가 바뀐다는 것은 전통적 측면과는 무관한 지극히 현대적인 관점일 뿐이다.
그럼 띠는 음력설에 바뀌는 것일까?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띠가 바뀌는 게 음력설이 아니라 입춘이라는 점이다. 오늘날에는 정월이 1월이지만 본래 정월과 1월의 의미는 다르다. 정월은 왕조가 시작되는 기준이 되는 달을 의미하며, 1월은 한 해의 시작이라는 뜻이다. 즉 정월은 왕조의 관점에 따라 바뀌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실제로 중국의 고대 왕조이자 공자가 이상적 국가로 인식했던 주(周) 나라는 11월이 정월이었다. 해서 동지가 설날이었고, 이러한 풍습이 오늘날까지 남아 동지에 팥죽을 먹으면 1살을 더 먹는다는 이야기가 유전되고 있는 것이다. ‘동국세시기’ 등을 보면, 동지를 아세(亞歲)라고 해서 작은설이라고 하는 것 역시 같은 이유이다. 동지가 설이 되는 것은 태양이 이때부터 길어지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본다면, 나름의 충분한 타당성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기준점 중 하나에 24절기의 첫 번째인 입춘도 있다. 입춘은 봄의 양기가 확립되는 절기인데, 이때를 맞아 농경사회에서는 한 해의 풍년을 기원했다. 그래서 입춘에는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즉 ‘입춘을 맞아 크게 길하니, 양기가 굳건해져 경사가 가득하리라’는 입춘첩(立春帖)을 대문에 써 붙이곤 한다. 동지에서 시작되는 양기가 입춘에 와서 비로소 굳건해지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동지와 입춘 같은 24절기는 모두 양력이다. 즉 전통적 음력과는 다른 태양을 기준으로 하는 문화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24절기의 시작이 입춘이므로 이를 기준으로 한 해가 바뀐다는 관점도 존재할 수 있다. 이렇게 입춘과 결부되어 있는 것이 바로 띠인 것이다. 즉 우리의 띠 문화는 놀랍게도 음력이 아닌 양력이 기준이라는 얘기다.
양력을 쓰는 요즘에는 동지나 입춘은 날짜 변동이 하루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음력을 기준으로 하는 설과 추석이 매년 널뛰기를 하는 것과는 다르다. 물론 음력이 일반적인 과거에는 설과 추석이 붙박이고, 동지나 입춘이 널뛰기를 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양력과 음력의 차이 때문에 입춘은 때에 따라서 설 앞에 오기도 하고 설 뒤가 되기도 한다. 올해 입춘은 2월 4일이고 설은 2월 16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설날 전에 태어나도 개띠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무술년을 황금개띠라고 하는 것은 무술년의 무(戊)가 오행의 배속에서는 황색인 토(土)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즉 개는 개되 황색 개라는 말이다. 사실 이렇게 띠 앞에 색을 넣어 부르는 것은 과거에는 백말 띠와 같이 특수한 경우에만 사용되었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 상업적 흐름과 결부되면서 띠의 색이 강조되는 양상이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황금개가 세상에 존재하는가? 황색 개란, 황구(黃狗) 즉 누렁이가 아닐까? 그런데 누렁이 띠라고 하면, 마음이 상할 수도 있으니 황금개로 포장하는 것이다. 띠의 ‘뽀샾’ 처리라고나 할까?!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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