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전문가 5인 진단]
남북대화 저비용 신호전달 방식
올림픽 기간 북한 방해 없을 것
북핵 해결하고 싶은 트럼프
코피 전략 심각히 검토 중
북도 도발 자제 기대 힘들어
올림픽 이후 긴장 고조 우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 상당수는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북미 대화 가능성은 낮게 보면서 올림픽 이후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것으로 우려했다. 트럼프 정부가 이른바 ‘코피 때리기(bloody nose) 작전’으로 알려진 제한적 대북 타격 방안을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고 북한도 평창 이후 미사일 시험 발사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5일(현지시간) 박정현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 로버트 매닝 애틀란틱 카운슬 선임연구원, 윌리암 브라운 조지타운대 교수, 앤드류 여 미국카톨릭대 교수, 패트릭 매커천 우드로윌슨센터 연구원으로부터 최근 한반도 정세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北, 김영남 파견 “북 대가 요구에 굴복하면 안 돼”
북한이 명목상의 국가 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북측 대표단 단장으로 파견한 데 대해, 전문가들은 대체로 북미 대화 보다는 남한과의 관계 개선 제스처로 파악했다. 매커천 연구원은 “김영남이 많은 의전 임무를 띤 명목상의 수반인 만큼 평창 대표단 단장을 맡은 것은 논리적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매닝 선임연구원은 “남북 화해를 추구한다는 신호를 보내는 저비용의 방식”이라며 “평창 올림픽 기간 북한의 방해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펜스 부통령 방한 발표 이후 나왔다는 점에서 미국과의 대화에 관심이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깊이 행간을 읽지는 않겠다”며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를 원한다면 단순히 그런 말을 하면 되는 것이다”고 말했다.
앤드류 여 교수는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회담 등을 통해 외교적 또는 경제적 이득을 얻기를 바라는 것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브라운 교수는 “북한은 그들이 인정하고 싶어하는 것 이상으로 압박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때문에 김영남이 어떤 대가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북한이 핵무기를 철회할 의지를 보이지 않는 한 문 대통령이 이에 굴복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펜스 부통령 방한 “접촉 있다면 비공식적 루트 통할 것”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김 위원장이 나란히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지만 두 인사 간에 진지한 대화가 오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한결 같은 전망이다. 펜스 부통령이 오토 웜비어 유족을 동반해 북한 인권 문제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이는데다가 북한의 김 위원장 역시도 핵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실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박정현 석좌는 “펜스 부통령이 웜비어 부친과 동반하는 것은 북한의 끔찍한 인권 문제를 부각시켜 북한에 최대 압박을 가하는 이유를 전 세계에 상기시키려는 의도를 시사한다”며 “이는 북한의 스키 리조트와 선수, 응원단 등에 대한 최근 언론 보도를 감안해 북한이 정상국가로 비치는 데 대한 맞대응이다”고 말했다. 매닝 선임연구원은 “의례적인 대화나 짧은 마주침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어떤 의미 있는 대화가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브라운 교수도 “최대 압박에는 대화도 포함되지만 이는 물밑에서 솔직하고 터프한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는 것이지 올림픽의 공개 무대에서 할 성격은 아니다”고 말했다. 여 교수도 “펜스 부통령과 김 위원장간 공식 대화가 있다면 의미 있는 외교적 돌파구가 되겠지만 상호 접촉이 있다고 하더라도 비공식적인 방식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의 코피 때리기 “여전히 논의 진전중”
최근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의 주한 미 대사 낙마로 수면 위에 오른 이른바 ‘코피 때리기(bloody nose)’의 제한적 대북 타격 방안에 대해 박정현 석좌는 “여전히 논의가 진전되고 있다”며 “군사 옵션의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군사 타격 방안이 트럼프 정부 내에서 엄포용이 아니라 실행 카드로 진지하게 검토되고 있다는 얘기다.
매닝 선임연구원도 “우려스럽게도 우리는 매우 위험한 시기에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 고위 관리들이 말하는 많은 것들이 예전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이 이라크 침공 전에 하던 말과 흡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내에 제한적 타격 방안에 대한 논쟁이 있는데,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조지프 던포드 합참 의장은 이를 반대해왔다”면서도 “평창 올림픽 이후 한미가 예정된 연합훈련을 진행하고 김정은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을 재개할 것으로 보여 긴장이 다시 고조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매커천 연구원은 “워싱턴의 전문가 커뮤니티는 압도적으로 군사 타격을 반대하고 있지만 백악관이 그런 결정을 할 배타적 권한을 갖고 있다”며 “예방 타격은 논쟁의 정상적 범위를 벗어나 있고 극도로 위험하다는 것을 트럼프 대통령이 이해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여 교수는 다만 “선별 타격을 더 선호하는 인사들이 정부 내에 있는 것은 확실하고 아마도 그 목소리가 더 커지는 듯한데, 정부가 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고 말했다. 브라운 교수는 “코피 때리기 논의는 최대 압박을 끌어올리는 한 방식으로 보인다”며 “김정은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하는 데 유용하다”고 말했다. 그는 “평양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한미 훈련이 시작되면 긴장이 다시 고조될 수 있다”면서도 “긴장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북한의 변화를 촉발시키는 데 긴장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 “일관성 없지만 압박 강화” “터프한 협상가”
대북 정책에서 대화와 압박 사이를 여러 차례 오갔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남북 대화가 진행된 이후에도 이를 반복하고 있다. 연초 북한과의 직접 대화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지만, 최근 국정연설 및 탈북자 면담 등을 통해서 북한 인권 문제를 집중 제기하고 있다. 차 석좌 낙마도 트럼프 대통령 의중이 반영된 것이란 관측이 많다. 이 같은 상호 충돌하는 메시지에 대해 매닝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말을 다 해왔는데, 워낙 일관성이 없어 명확한 결론을 끌어내기 어렵다”며 “분명한 것은 그가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대통령이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가 무엇이든, 압박 정책이 중국의 협조를 얻어 제재를 강화하는 데 성공한 것은 점수를 줄 만하다”면서도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과 다른 행정부 인사들간 상호 충돌하는 불협화음이 압박 정책의 기반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고 지적했다. 여 교수는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 모순된 메시지를 보낸다고 여길지라도, 트럼프 자신은 북한에 대한 모든 옵션을 열어두고 있다고 볼 것”이라며 “그의 입장에선 탈북자를 만나고 남북 대화를 지지하고 북한과 대화하는 것이 동시에 가능하다”고 말했다. 브라운 교수는 “그는 대화와 위협을 모두 함으로써 압박을 최대화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으로 생각된다”며 “그의 언술은 정상 회담용이 아니라, 터프한 비즈니스 협상가를 닮은 것이다”고 평가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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