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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토마스 모어(2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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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토마스 모어(2월 7일)

입력
2018.02.07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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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의 토마스 모어가 540년 전 오늘 태어났다.
'유토피아'의 토마스 모어가 540년 전 오늘 태어났다.

‘유토피아’의 잉글랜드 인문주의자 토머스 모어(Thomas More)가 1478년 2월 7일 태어났다. 그는 저명한 법관의 차남으로 런던에서 태어나 옥스퍼드대(신학)와 링컨법학원에서 공부한 뒤 1504년 하원 의원이 됐고, 1510년 런던 부시장이 됐다. 1516년에 발표한 ‘유토피아’는 그러니까 공직자 모어가 쓴 작품이었다.

책 1권에서 그는 15~16세기 잉글랜드의 정치ㆍ사회 현실을 비판했다. 서민들의 고된 노동과 토지로부터 쫓겨나는 농민의 삶, 노동하지 않고 사치를 일삼는 귀족들의 삶과 군주ㆍ귀족의 무능, 전쟁의 피폐가 주 내용이다. 2권에는 유토피아라는 곳을 다녀왔다는 이에게서 들은, 그 섬의 이상적인 통치 형태와 주민들의 삶 이야기를 담았다. 남녀ㆍ신분 차별 없는 하루 6시간 노동과 풍요 속 금욕ㆍ절제의 일상, 공공선과 지적인 탐구를 통한 성취의 쾌락….

스콜라 철학자 모어의 천국은 가톨릭 성전의 이상이었고, 위정자 모어의 지옥은 그 이상과 판이한 현실이었다. 인문학자 에라스무스(1466~1536)와 깊이 교유했다는 모어는 물론 현실 교회의 불의와 부정을 못마땅해 했지만, 교회와 신앙 자체의 권위에는 도전하지 않았다. 그는 대륙의 종교개혁에 휘둘린 신학자 다수를 화형대에 세운 이단 심문관이기도 했다. “지상 천국을 약속하는 자들이 지옥을 만들어낸다”던 칼 포퍼의 말은 그의 경우에도 옳았다. 그리고 그의 유토피아는 역설적으로 체제 유지의 이데올로기이기도 했을 것이다. 유토피아는 다만 지향해야 할, ‘어디에도 없는(U) 곳(topia)’이기 때문이었다. 저 책을 쓴 뒤 그의 관운은 더 개어 하원의장, 대법관, 헨리8세의 외교특사 등을 역임했다.

그는 가톨릭의 권위에 칼을 들이민 헨리 8세의 재혼과 수장령에 맞서다 1535년 반역죄로 처형 당했다. 결과적으로 그의 지옥은 왕의 정념에 얽혀 있었던 셈이지만, 바탕에는 가톨릭교회의 이상이던 유토피아가 있었다. 그의 처형에 앞장섰던 국왕의 수석장관 토머스 크롬웰(1485~1540) 역시 헨리 8세의 네 번째 결혼을 주선하다 왕의 눈밖에 나서 5년 뒤 참수 당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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