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올림픽 이후 무릎 부상 고전
관절 연쇄작용 ‘키네틱 체인’ 데이터
정상으로 회복되며 초반 100m 기록 향상
우승 후보 일본 고다이라 제압 가능성

‘빙속 여제’ 이상화(29)는 지난해 2월 이후 국제무대에서 고다이라 나오(32ㆍ일본)와 7번 맞붙어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이상화가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이후 고질적인 무릎 부상에 시달리며 고전하는 사이 고다이라는 이번 시즌 월드컵 1~4차 대회를 모조리 석권하며 기세를 올렸다. 외신들은 하나같이 평창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이상화보다 고다이라의 금메달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하지만 이상화는 이런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 국내 빙상 전문가들도 “올림픽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며 반전을 꿈꾼다. 이상화가 큰 무대에 강하다는 막연한 기대감만은 아니다. 과학도 이상화의 금메달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초반 기록을 좌우하는 ‘키네틱 체인(kinetic chain)’ 수치가 좋아지고 있고, 낮게 깔린 질주 자세의 변화와, 원심력을 이겨내는 특유의 허벅지 힘, 그리고 올림픽 2연패로 증명한 강심장이 있기 때문이다.
키네틱 체인은 엉덩이와 무릎, 발목 관절이 서로 영향을 주면서 힘을 전달하는 연쇄 작용을 의미한다. 스케이트를 탈 때는 푸시오프(추진력을 얻기 위해 힘차게 박차고 나가는 힘) 끝 지점에서 무릎과 엉덩이, 발목에서 최대 각도가 나와야 폭발적인 힘을 낼 수 있다. 특히 단거리인 500m의 경우 스타트 후 첫 100m가 상당히 중요하며 이 구간 기록은 키네틱 체인이 좌우한다.
지난해 10월과 11월, 1~3차 월드컵에서 이상화의 초반 100m 기록은 10초 30~40대에 그쳤다. 하지만 12월 4차 월드컵 때 10초 26(1차), 10초 29(2차)를 잇달아 기록했다. 특히 4차 월드컵 1차 레이스 때는 고다이라(10초 27)를 앞섰다. 이상화는 초반 100m에서 선전한 덕에 전체기록(이상화 36초 71, 고다이라 36초 50)에서 뒤졌지만 1초 이상 차이 나던 고다이라와 격차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한국스포츠개발원 스피드스케이팅 담당인 송주호 책임연구위원은 “이상화의 키네틱 체인 수치를 구체적으로 공개할 순 없지만 무릎이 아팠던 지난 시즌과 비교하면 확연히 좋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키네틱 체인은 선수나 지도자라 해도 눈으로 확인할 수 없고 영상 분석을 통해서만 미세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이병호 세브란스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허벅지와 엉덩이 등 하체 근육에서 생성된 힘이 무릎을 통해 전달될 때 적절한 각도가 유지돼야 하는데 무릎 통증으로 각도에 변화가 오면 힘이 손실된다. 이상화가 부상에서 회복해 힘을 최대로 전달하게 되면서 기록이 향상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관규 평창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위원장은 “이상화가 막판 스퍼트가 좋은 고다이라를 잡으려면 초반 100m에서 최소 0.1초 이상 벌려놔야 한다. 이상화의 최근 100m 페이스가 상승세라는 걸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해석했다.
레이스를 펼칠 때 이상화의 자세 변화도 눈에 띈다. 스피드스케이팅에서는 공기 저항을 덜 받기 위해 최대한 낮은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주용 자동차의 앞 부분이 하나 같이 낮고 뾰족하다는 걸 떠올리면 이해가 빠르다. 전성기 이상화의 상체는 빙면과 거의 수평을 이룰 정도로 낮았다. 송 위원은 “이상화가 부상 후유증으로 제 컨디션이 아닐 때는 상체가 들리는 현상이 있었는데 요즘 그런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다이라와 펼칠 치열한 막판 스퍼트 싸움 때 이상화가 내세울 무기는 허벅지다. 그의 허벅지 두께는 23인치(58.43cm)로 알려져 있다. 어지간한 남자선수 못지 않고 일반 여자의 허리 둘레와 맞먹는다. 강철 같은 허벅지는 직선 주로에서 폭발적인 추진력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일 뿐 아니라 코너를 돌 때도 효율적인 레이스를 가능하게 한다. 코너링을 할 때 무작정 속도만 높이면 원심력도 커져 오히려 바깥으로 밀려날 수 있는데 이상화는 강한 허벅지로 버텨낸다.
김관규 위원은 “이상화는 전성기 시절 마지막 코너에서 중심을 잃어도 특유의 하체 힘으로 이겨내는 능력이 돋보였다. 지난해 여름에도 이상화가 단내 나는 체력 훈련을 소화한 것으로 안다. 평창에서도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상화도 자신감에 차 있다. 독일에서 마지막 전지훈련을 마치고 6일 강릉선수촌에 입촌한 이상화는 많은 취재진 앞에서 “올림픽 경기가 열린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면서 환하게 웃는 여유를 보였다. 이틀 전 강릉에 도착한 고다이라가 “이상화와 뜨거운 경쟁을 펼치겠다”고 말한 것에 대해 그는 “우리는 늘 뜨거웠다”고 농담하면서도 “부담감을 얼마나 내려놓느냐가 중요하다”고 각오를 다졌다.
한편, 한일 대표팀 훈련 시간이 겹치면서 이상화와 고다이라는 이날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오벌에서 함께 연습했다. 두 선수는 특별히 말을 나누지는 않은 채 각자 레이스에만 집중했다.
강릉=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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