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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프 첫 길 내는 ‘전주자’는 스키 경기서 없어선 안 될 존재죠”

입력
2018.02.06 18:0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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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드 종목 맡은 박혁ㆍ이장우, 슬로프 길잡이로 코스 점검

“올림픽 출전의 꿈 무산됐지만 내 설명 선수들 참고해 자부심”

2018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 종목에서 전주자로 나서게 될 이장우(왼쪽)와 박혁. 이장우ㆍ박혁 제공
2018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 종목에서 전주자로 나서게 될 이장우(왼쪽)와 박혁. 이장우ㆍ박혁 제공

알파인 스키 경기를 위해 꼭 필요한 사람이 슬로프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전주자(forerunner)’다. 본 경기에 앞서 시범으로 경기를 한 뒤 선수들에게 코스 정보를 제공하는 선수다. 코스 상태가 괜찮은지, 시야에 방해가 되는 요소는 없는지 등을 꼼꼼히 점검한 뒤 심판과 관계자들에게 전달한다. 선수와 코치 역시 전주자의 주행을 세심히 관찰해 주행 전략에 참고한다. 특히 표고차가 커 최고 시속이 140㎞가량 되고 점프 구간도 많은 활강종목의 경우 전주자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때문에 국제스키연맹(FIS)은 세계랭킹 포인트를 일정 수준 이상 갖고 있는 수준급 선수들을 대상으로 전주자를 선발한다. 2018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 종목에서는 2명의 한국 전주자들이 슬로프를 누빈다. 박혁(28)과 이장우(23ㆍ국군체육부대)가 그들이다.

이장우는 6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출전 선수와 똑같이 매일같이 슬로프를 타며 올림픽을 향해 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박혁과 함께 이번 올림픽 활강, 슈퍼대회전, 복합 등 스피드 종목에서 전주자로 나선다.

올림픽 전주자로 나설 만큼 빼어난 실력을 갖췄지만, 사실 이들은 원래 기술계 선수였다. 올림픽 유치가 확정되기 전까진 국내엔 활강 경기장 하나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했던 탓에 스피드계 선수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국내에 20여 개에 달하는 스키 리조트가 있지만 전부 표고차가 낮고, 슬로프의 길이와 폭이 짧고 좁았다.

올림픽 경기 전주자는 자국에서 준비하는 것이 기본이다. 발등에 떨어진 스키대표팀은 2015년 8월 처음으로 스피드팀을 만들었고 이들을 본격적으로 ‘육성’하기 시작했다.

기술계에서 스피드계로 바꾸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9살 때부터 회전ㆍ대회전선수로 활약해온 이장우는 “회전 스키의 길이는 165㎝인데 비해 스피드 종목은 218㎝정도 된다”며 “이 부분은 여전히 적응단계에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박혁 역시 “처음 종목을 바꿨을 때에는 별 다를 게 있겠나 싶었는데, 속도도 훨씬 빠르고 중간에 점프 구간도 있어 힘들다”고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이들은 스피드 스키 훈련을 받은 지 10개월 만에 FIS로부터 전주자로 인정을 받았고, 세계 스키 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군터 후에라 FIS 올림픽 총괄은 이를 두고 “미러클(기적)”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동계올림픽에서 선수로 뛰고 싶은 꿈은 무산됐지만 그들이 가진 자부심은 선수 못지 않다. 이장우는 “전주자는 모든 스키 경기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길잡이 같은 존재라서 아무나 할 수 없다”라고 목소리에 힘을 줬다. 박혁은 “전주자는 선수들에게 114 안내전화와 같은 존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전주자가 코스를 내려오면 대회의 코스 관계자들과 코치들에게 둘러싸여 슬로프와 관련된 질문에 답한다는 뜻에서다. 그는 “나의 설명이 출발 지점에 있는 선수에게 전달돼 그들의 주행 라인에 영향을 끼칠 거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설렌다”고 말했다.

평창=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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